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51
보스톤코리아  2016-10-31, 12:10:52 
[지소태후는 옥진 형제와 가까이하지 않았다. 금진은 이에 문상蚊上에 물러나 살았다. …구리지는 낭도를 모아 금진을 원화源花로 삼고자 했다. 이보다 앞서 구리지는 숙위두상宿衛頭上으로서 금진의 명을 전殿 아래서 늘 받들었다. 구리지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원하여, 천주사天柱寺에서 무릇 5년을 발원했는데, 금진이 비로소 홀로 살게 되었다. 구리지는 이에 날마다 가서 원화가 될 계책을 바쳤다. 금진은 또한 나이가 적었기에 명리를 탐하여 허락하였다. 

구리지는 또한 …. 원화라는 것은 의협의 인물로 낭도들과 더불어 죽음으로써 의리를 지킨다는 마음을 보이지 않으면 …. 금진이 말하기를 … 구리지… 낭주에게 …한 것이 무릇 5년 전의 일로 …의 일이다. 금진은 이에 한탄하여 말하기를 “나는 … 바라 … 무리가 받들었다…. 너의 처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 말하기를 “네가 나로 하여금 …”라고 했다. 구리지가 말하기를 “신은 … 아직 …의 몸 … 허락합니다” 했다. 금진이 말하기를 “네가 나의 집 … 황후皇后의 귀함으로 뒷간에서 사통을 허락하여 …” 했다.]

이 부분도 탈자가 많아서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지만 금진과 구리지와의 관계, 지소태후와 금진과의 관계, 그리고 구리지의 출생 내역을 볼 수 있다. 옥진과 금진은 자매로서 1세 풍월주 위화랑의 딸들이다. 어머니는 오도부인이다. 그들 모두 법흥왕의 후궁이었다. 그러다가 법흥왕이 죽은 후 진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여러 연유로 지소는 옥진과 금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한 연유는 사료에 나와 있지 않지만 당시의 정치상황과 인맥姻脈을 살펴보면, 가장 큰 연유는 아마도 후계 문제로 지소와 옥진이 서로 대립하였다. 먼저 옥진은 박영실에게로 시집을 갔는데, 시집가는 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법흥왕이 후궁으로 삼았다. 그런데 여느 후궁과 달리 옥진을 맞을 때는 친히 결혼식(吉禮)을 올리고 궁으로 데려왔다. 궁주宮主의 지위를 얻은 옥진은 법흥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아들 비대전군比臺殿君을 낳았다. 물론 당시에는 법흥왕의 정비가 있었다. 정비 보도保道부인(지소의 어머니)은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비대가 태어난 후 법흥왕이 그녀에게 비구니가 되라는 명을 내렸다. 이렇게 법흥왕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적통의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법흥왕은 옥진에게서 태어난 비대로 태자를 책봉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법흥왕의 딸인 지소와 아우인 입종 사이에서 태어난 삼맥종이 어린 나이에 등극을 하니 그가 신라의 제24대왕 진흥왕이다. 

법흥왕, 그는 왕권으로도 아들 비대를 태자로 책봉하지 못했던 연유는 옥진의 아버지 위화랑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옥진은 골품이 없다(무골품無骨品)’, 옥진은 다만 후궁이 될 수 있는 대원신통의 종宗이었다. 즉 비대가 성골이 아니기에 왕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법흥왕은 수 많은 비빈들 중에서 옥진을 가장 총애하였다. 총애 뿐만 아니라 옥진을 신으로 여겼다. 법흥왕과 옥진의 교신상交神象이 신궁에 모셔져 있었다. 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인 12세 풍월주 보리공조에 보면 하종이 신궁에 들어갈 때에 법흥왕과 옥진궁주의 교신상 중에 옥진에게 먼저 참배하였다. 이에 보리가 하종에게 잘못이 아닌지 묻자, 하종이 대답하길 “선제(법흥왕) 또한 말하기를 ‘억조창생이 짐을 신으로 여기는데, 짐은 옥진을 신으로 여긴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의 하나였던 옥진은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법흥왕이 신격화한 여인이었다. 

옥진의 아버지는 위화랑이며 어머니는 오도낭주이다. 옥진은 사도왕후(진흥왕의 정비)의 어머니이다. 사도왕후의 아버지는 박영실이다. 그리고 칠색조의 꿈을 꾸고는 법흥왕에게 동침을 원하였지만 왕은 빈첩의 탄생임을 알고 영실공과 동침을 하게 하여 얻은 딸이 바로 묘도부인이다. 묘도는 너무 어려서 왕을 받들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옥진은 또 칠색조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 묘도의 품으로 날아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묘도의 처소로 가보니 그녀가 미진부와 합방하고 있었다. 이렇게 태어난 여인이 바로 신라의 권력자 미실美室이다. 미실의 외모는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명랑함은 벽화를 닮았고,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았다’.

또다른 지소의 연유는 자신의 딸 숙명공주를 진흥왕의 왕비로 들이면서 나이가 든 색공의 후궁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금진은 결국 궁에서 계속 살지 못하고 문상이란 지역으로 나와서 홀로 살게 되었다. 드디어 구리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구리지는 오래 전부터 금진을 연모하여 절에 가서 5년이나 기도를 드렸다. 부처의 음덕인지는 몰라도 구리지의 뜻은 이루어졌고, 그들은 토함과 사다함 그리고 딸 새달을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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