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65회
보스톤코리아  2016-10-10, 12:27:16 
문득 '소리와 공명'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소리라는 것이 귀에 울리는 울림이라면 어쩌면 공명은 마음에서 울리는 울림이리라. 번잡한 도시에서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과 소음에서 마주한 소리와 이른 새벽 고요한 숲에서 듣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그렇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소리마저도 고요한 자리에 서면 움츠러들고 무슨 말(소리)을 해야 할지 망설임마저도 든다. 그것은 현대인의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리란 생각이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이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나무의 모습은 수도자들에겐 고행자의 모습으로 보이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이정표로 보이며, 신을 찾는 사람에겐 위대한 신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바이올린 현에서 우러나오는 만 가지 음색은 아마도 비바람을 맞으며 웅크렸던 시간들의 공명일 것이다."

겨울 산을 올라본 이들은 알 것이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깊은 숲에 들면 나무들의 키가 작아지고 잎이 작아지고 있음을 말이다. 춥디추운 겨울의 혹한과 세찬 비바람의 한파를 견디며 묵묵히 제 생명을 지키는 나무들을 보면 참으로 감동하게 된다. 어디 산뿐일까. 화씨 110°F(섭씨 40°C)를 웃도는 무더운 열기 속 사막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물방울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생명의 존귀함은 마찬가지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에서 쓰러지지 않고 제 생명을 지키며 키우는 자연을 보면서 생명의 존귀함과 함께 창조주의 손길을 본다.

이 세상에는 얼굴의 색깔과 모양만큼이나 삶의 모양과 색깔과 그리고 삶의 깊이와 높이와 너비는 각양각색이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서 나 자신만이 제일 견디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얼마나 많던가. 주변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면 걱정근심 하나 없어 보이고 그들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더욱이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낮아진 자존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와 나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한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일 것이다. 

이렇듯 다 똑같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를 들고 태어났느니 말았느니 하는 얘기가 있지 않던가. 물론 어느 출발점에서 시작했느냐가 물론 중요할 테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놓인 지금의 환경이 어느 곳인가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출발점이란 생각이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노력하지 않고 주저앉는다면 그것보다 더 초라한 삶이 어디 있을까. 그것이 경제적이든 건강이든 간에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벗어나야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 말고, 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 탓이든, 남의 탓이든 간에 탓이란 끝이 없으며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내게 지금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물질주의 현실에서 돈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돈으로 자식을 어찌 살 수 있으며, 돈으로 어찌 건강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니 곁에 건강한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어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음이 행복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 있더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억지로 감추고 덮고 밀어내지 말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새로운 시작점이 열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삶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배고플지라도 좌절하지 않는 굳건한 정신과 육체의 꿋꿋함(건강함)이 있다면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 아픔과 고통과 배고픔이 삶에서 더욱 든든해지고 튼실해져 그 어떤 비바람과 한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삶의 약속인 까닭이다. 저 로키산맥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에서 무릎 꿇은 나무처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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