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9. 주권 회복을 위한 만리 길 (2)
보스톤코리아  2016-10-03, 11:58:34 
인디언 권리기금(The Native American Rights Fund) (계속)
동 기금이 이루어낸 성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Cobell v. Salazar(Cobell v. Kempthorne이라고도 부름) 소송사건을 승소로 이끌어 2009년도에 무려 34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일을 들 수 있다. 미국 사법 사상 최대 규모의 대표소송 사건으로 기록된 이 소송은  인디언들의 신탁토지 관리를 잘못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디언들이 미국 이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는데 재판에 13년이나 소요되었다. 34억 달러 중 14억 달러는 원고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20억 달러는 도스법에 의거 할당된 땅을 되사서 부족 소유지로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 
옛 말에 울지 않는 아기에게는 젖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청원하고 호소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는 고사하고 주류사회로부터 관심조차 얻어낼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디언의 권리를 되찾는 데에 앞장서겠다고 나선 무리가 있었으니 인디언 행동주의운동가 모임(American Indian Movement; AIM)이 바로 그들이었다. 1968년 7월 미니애폴리스에서 결성된 AIM은 흑인 인권운동가인 햄턴(Fred Hampton)이 주도하는 무지개연대(Rainbow Coalition)에도 가맹하여 1970년대를 통하여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일으켜 인디언의 권리회복에 관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 

AIM은 1970년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에 플리머스 항구에 정박 중인 메이플라워호 모형을 점거하고 백인들이 성소로 여기고 있는 플리머스 바위(Plymouth Rock)에 붉은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행동주의 시위를 개시하였다. 1971년에는 백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네 전직 대통령 얼굴이 조각돼 있는 러쉬모어 산(Rushmore Mountain)을 점거하기도 하였다. AIM의 본격적인 활동은 1972년 11월 인디언국 사무실 점거사건으로 시작되었다. 1993년에는 노선 갈등으로 인하여 The AIM-Grand Governing Council과   AIM-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Autonomous Chapters의 두 파로 갈라졌다.

알카트라스 섬 점거사건
Indians of All Tribes (IAT)라는 또 하나의 인디언운동 단체가 1969년 11월 20일부터 1971년 6월 11일까지 샌프란시스코 만 안에 있는 알카트라스(Alcatraz) 섬을 점거하였다. AIM을 비롯한 여러 인디언운동 단체가 합류하고 많은 인디언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여 점거인원은 한 때 400명에 달하였다. 원주민은 물론이고 비원주민들도 음식을 제공하는 등 점거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당연히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고 인디언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일반 미국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라코타공화국의 독립선언 문서를 국무부에 전달하였던 민즈(Russell Charles Means)와 그의 아버지를 포함한 몇 명의 라코타 인디언들이 1964년 3월에 잠시 점거한 적이 있었다. 민즈는 1969년 점거에도 참여하였다. 민즈는 AIM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배우로서도 이름을 날렸는데 1992년에 제작된 영화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에서 Chingachgook 추장 역을 맡아 열연한 바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12년 10월 22일 후두암으로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인디언국 버클리 사무소에 근무하던 퍼디(Doris Purdy)가 섬에 들어가 하루 동안 머물면서 그 때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기록하였는데 이를 퍼디의 딸이 2008년 11월 27일에 epurdy라는 아이디로 유튜브에 업로드 시켜 놓았다.

IAT의 주장에 의하면, 1868년에 미국정부와 수우인디언 사이에 맺어진 라라미 조약에 따라 사용 목적이 끝나서 놀고 있는 땅은 모두 원래의 주인인 인디언에게 돌려주기로 돼 있다고 한다. 알카트라스섬에 있던 형무소가 1963년에 폐쇄됨에 따라 1964년에는 연방정부가 그 섬을 불용자산으로 분류하여 방치되어 있었다. 인디언들은 그 섬을 돌려받아서 인디언박물관도 설립하고 인디언 연구중심과 영적 활동의 중심으로 활용하기를 희망했다.
점거 후 며칠 지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에는 전국 각지로부터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알카트라스로 몰려 왔다. 12월부터는 자체 라디오방송을 시작하고 이듬해 1월부터는 자체 신문도 발행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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