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61회
보스톤코리아  2016-09-12, 11:57:45 
정말, 그렇다라는 생각을 함께하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열어간다. 그래, 정말 사는 일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살 맛도 나고 죽을 맛도 나지 않던가. 삶이 밋밋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면 지루해서 어찌 긴 여정을 걸어갈 수 있을까 말이다. 천양희 시인의 '사람의 일'이란 시편을 만나며 가슴 한편이 짠해지고 아려오고 위로감마저 온몸과 마음으로 퍼진다. 그래, 그렇구나! 나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야 비로서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고 비로소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일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천양희 시인의 시편 중에서 -

"저는 시인이 된지 올해로 50년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인데, 시에는 나이가 없어선지 저는 아직도 시란 무엇이며 왜 쓰는지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자신한테 왜? 어떻게?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란 제 속이 검게 썩어가면서도 열매를 맺는 먹감나무 같은 것이며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고독에 바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이 시의 길이고 시인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먼 길을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여류 시인, 여류작가, 여류화가 등. 그렇지만, 또 이 싫은 단어를 나 자신이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잠깐 잊기로 하자. 내가 좋아하는 여류시인 중에 고정희 시인이 있었다. 자신의 소리를 묵묵히 내면서 올곧게 걸었던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그렇게 스스럼없이 자신이 좋아하던 산을 오르다 떠났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인이 바로 천양희 시인이다. 젊은 날의 삶의 골짜기가 깊고 골마다 아픈 자국이 남아 흐르는 여인이다.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던 좋아하던 시인이다.

생각이 모아지고 마음에 오래 머무르면 하나의 바람이 된다. 그 바람은 소원이 되어 이루어지는가 싶다. 이런 경험을 삶에서 몇 번 반복하면서 인연이란 단어를 가끔 깊이 묵상하게 된다. 이성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삶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살지만, 때로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연들이 몇 있지 않던가. 중요한 것은 그 누구와의 어떤 만남은 나 자신이 선택할 수는 있지만, 만남 이후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여운은 내 선택 후의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번 천양희 시인과의 만남이 그랬다. 

50년 동안 시인의 길에서 한길을 걸으며 쉬지 않는 물음으로 또다시 묻는 시인의 영혼이 더욱 궁금해졌다. 여기서 잠시 나의 존재를 또 재확인한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깊은 영혼의 우물 속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녀가 이토록 삶을 쓰며 시를 사는 이유는 결국 죽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 아닌 잘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삶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의 생명의 존엄성, 더불어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야 하는 공생공존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무엇인가 가까이에 있는 것들보다는 멀리에 있는 것들에 눈이 먼저 간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들은 하냥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속의 숲이 그렇고 흐드러지게 핀 들판의 들꽃이 그렇고 먼바다의 수평선이 그렇지 않던가. 하지만 그곳 가까이에 가서 보면 아름다움 속에 있는 또 다른 고통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천양희 시인의 시편처럼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서로 만나서 반갑고 부대끼다 보면 싫증이 나고 그러다 헤어지고 그렇게 이별한 후 외로워지면 다시 사람이 그리운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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