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60회
보스톤코리아  2016-09-07, 11:53:37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이란 추함의 반대말일까. 그렇다면 추함은 무엇을 말함이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모두가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자신의 색깔만큼만 보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나는 어제 매사추세츠 주 보스톤에서 5시간 비행 시간을 지나 캘리포니아 LA에 도착했다. LA에서 문학 행사가 며칠 있어 하루 일찍 떠나온 것이다. 그것은 여행을 시작하며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자유로운 여행뿐만 아니라 짜여진 모임이라 할지라도 하루 정도 일찍 가서 그 도시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그 느낌들을 통해 더 깊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어제 LA에 도착해 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서 묵고 있다. 그리고 어제 반나절을 그 근처를 돌며 한국 식당에 들러 맛난 콩국수도 먹고 여름내 먹고 싶던 팥빙수도 사 먹었다. 그런데 높은 빌딩 숲 사이 길목에서 즐비하게 늘어선 텐트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못 보던 광경이라 무슨 텐트 회사에서 광고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한발자국씩 옮겨가는데 가까이 가기 전부터 퀴퀴하고 쉰내나는 고약한 냄새가 잠깐사이에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것은 알고보니 텐트 회사의 광고가 아닌 집이 없어 떠도는 홈레스(Homeless)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그들이 의지하며 그늘로 삼은 곳은 바로 다름 아닌 높고 웅장한 큰 교회의 담벼락과 누가 코리아를 대표하는 빠른 정보과 통신으로 알려진 방송국 담벼락이라는 사실이다. 가는 곳마다 사진 담기를 좋아하는 나 역시도 이 모습은 차마 담을 수가 없었다. 홈레스 피플이란 명찰을 저들은 언제부터 달고 다녔을까. 그들이 진정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목에 달렸을 이름표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멍해진다. 그것은 한 개인의 책임이라 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사회와 그리고 나라의 책임이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게으름도 있을 테지만, 그 게으름의 일부 책임만큼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이고 까닭이다. 그들에게 당장 무엇을 도와줄수는 없지만, 미안한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생계를 꾸려가기 어렵고 사는 일이 힘들고 버거워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저 이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자리에 서게 되면 더 멀리 더 넓게 그리고 더 높이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마음의 눈이 조금씩 뜨이고 혜안이 조금씩 열린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 자식을 내어놓는 밖의 세상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사는지 관심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듯 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면 적어도 주변을 살펴봐야 할 일이다. 그것은 끼리끼리라는 우리의 차원을 넘어서 함께라는 책임의식을 말함이다. 내 것의 눈으로는 볼 수없는 우리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비밀을.

우리는 식당이나 커피샵에서 늘 보는 일이지만,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지 않던가. 그나마 미국은 그렇지 않지만, 한국의 밤 풍경을 떠올려 보자. 어두운 도심 속 붉은 십자가들이 두 눈에다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의 먼 바다의 수평선처럼 보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십자가의 숫자만큼이나 세상은 더 밝아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이들의 삶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간절히 모은 두 손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나 역시도 이곳에 와 이 광경을 목격하면서 한 종교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도심 속 높은 빌딩 숲 사이 담벼락에 즐비하게 늘어선 노숙자들의 텐트를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잠시 보고 느끼며 울컥하는 감정의 일렁임으로 그칠 것인가.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하던 나를 잠시 마주하고 대면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진정 실천 없는 자비와 긍휼은 거짓이란 울림이 가슴을 헤집는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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