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사당역 연가戀歌
보스톤코리아  2016-09-07, 11:52:06 
  서울 사당역 지하철에서 내리면 넓은 사거리를 만난다. 그 근방 골목은 아직도 내게 낯설지 않다. 연애할 적에, 사귀는 여자애네 집이 근처에 있었다. 그게 삼십년도  훌쩍 넘었다.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기 전이고, 사당역은 이름도 없었다. 여자애가 현재 내 아내다. 지난 여름은 더웠는데, 내가 연애 할적에도 날은 더웠다.

  사당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탈 적엔 머뭇거린다. 도대체 어떤 차를 타야 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잘못 탔기에 내렸다가 다시 탄게 몇번된다. 내려서 출구로 나왔다가, 표를 사가지고 다시 타야 하는 수고로움이었던 거다. 촌사람에게 지하철 타기가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잘못 내린 역에서 돌아가려고 /남들 다 빠져 나온 출구 
되짚어 들어가는데 /이 길 먼저 지나간 사람들 
뒷모습이 하나씩 지워진다. 
(고두현, 지하철에서)

  그날 약속장소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마침 목에선 두툼한 커피향내를 불렀다. 머리 속은 기름때가 끼어 있는듯 맑지 않았다.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스타벅스 커피집이 눈에 띄였다. 이층 창가에 자리 잡았다. 통창으로 눈앞엔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선 길 건너편이 빼꼼히보였다. 목은 울컥였는데,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 지니 무슨 조화인가. 고향 마을을 찾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길 건너편, 방배동에 내 처가의 옛집이 있었기 때문일터.

  뭔가 적어야 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꺼냈다.  옆에 앉아 열심히 작업하던 젊은이와 말이 터졌다. 깔끔한 청년이었는데 이력서를 쓰고 있었다.  요새는 커피집에서 이력서를 쓰는 모양이다. 그가 내게 물었다. ‘책을 쓰시나 봐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내가 말했다. ‘책은 무슨책. 그저 옛날 추억을 끄집어 내고픈 욕망.’  잘생겨 깨끗하기만 한 청년이 원하는 직장을 얻기를 바란다. 나도 그 시절 사당동/방배동 이근처를 배회할적에 미래는 캄캄했더랬다. 사당역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캄캄하기는 마찬가지인 겐가?

  창으로 밖을 내려다 볼적에 고운 노부부가 걷고 있었다.  노부부는 아들집에라도 가는 길인가. 동네 산책을 나온 길인가? 우리 부부도 노부부처럼 곱게 늙어갈 수있을 것인가. 그래서 아내의 손목을 잡고 이 길을 다시 걸어 볼수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아내를 그곳 처가에 남겨 놓고 돌아서지는 않는다. 우린 같은 집에 사니 말이다. 

  이젠 아이도 떠나 빈 둥우리에 달랑 아내와 내가 남았다. 언젠가는 아내 손목을 잡고 사당역 근방을 배회해야 할까보다. 바래다 줄 집이 있을리 없지만, 같이 걸어갈 길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커피집이 그때까지 있을 것인가. 대신 컴컴하고 후미진 곳으로 아내를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 사당역 연가戀歌만 흥얼거린다.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세기 29:27)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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