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마포종점
보스톤코리아  2016-08-29, 13:21:15 
  지독히 덥다. 처서處暑가 지났는 데도 숨 쉴수 없었다. 수십년전에도 서울의 한여름 더웠던 모양이다. 이상李箱이 헐떡이며 투정했으니 말이다. 이상李箱은 그런 중에도 전혀 권태롭지 않은 문장을 남겼다. 여기 옮긴다.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 ‘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하루 왼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짓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상의 ‘권태’ 중에서, 이태준, ‘문장강화’)

  이 달초에 한국방문중 이었다. 마포에 갈일이 있었다. 그 날도 더웠는데,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했다. 넓은 마포대교를 건널때였다. 멀리 양화대교가 보였다.  지금은 다리이름이 달라졌다만, 그때는 제2한강교라 불렀다. 유엔군 참전탑이 위용도 당당하게 서있던 다리였다. 십 수년을 그 다리를 건너 다녔다. 그때는 멀지않게 당인리 발전소에선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도한 한강물과 사뭇 조화로웠다. 그 당인리 발전소는 이제 지하로 내려 가는 모양이다. 지상엔 공원이 생긴다던가. 게다가 두 세개의 한강교가 이제는 십수개 넘어 섰으니, 대단하다. 그날 마포대교를 넘을 적에 당인리 발전소 굴뚝에서는 흰 연기를 뿜어 올렸던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마포라 한다면 옛 가요 ‘마포종점’ 일게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기억하실 게다. 오래된 유행가인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은방울 자매가 노래했다. 가사가 아득하다. 마포는 전차 종점이었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2 절이 계속된다.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하나 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하나/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전차를 처음 타본건 국민학교에 다닐 적이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올라갔다. 그림으로만 보던 전차를 타본 것이다. 처음 타본 전차는 신기했고, 가슴 설레는 일대 사건이었다. 대도시 서울을 방문했다는 증표였으니 당연히 자랑스러웠다. 갈색 나무의자가 꽤 인상적이었고, 목을 빼고 지나치는 길거리를 열심히 쳐다 봤던 기억이다. 전차에서 내릴적엔 무척 아쉬웠고, 커서 전차운전수가 될것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전차요금이 얼마였는지 알 수없다. 

  타고 있던 자동차가 어림짐작 전차종점 자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 근처 어디쯔음이 전차종점 이었을 거라 운전하던 친구 말해줬다. 다음엔 한강 유람선을 타보자고 그가 권했다. 딴나라 사람처럼 내가 되물었다. ‘요새도 새우젓배가 마포나루에 들어 오는가?’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태 9: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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