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41
보스톤코리아  2016-08-22, 11:21:57 
사랑하는 연인을 전쟁터로 선뜻 떠나 보내지 못하고 신변을 염려하며 곧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부른 미실의 노래 '송출정가送出征歌'와 승전하여 개선한 사다함이 미실을 찾았으나 이미 남의 아내가 된 것을 본 후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 '청조가靑鳥歌', 이 두 수의 향가는 화랑세기에 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사다함은 일찍부터 탁월한 지도력과 도야陶冶된 인격으로 인하여 1,000여명의 많은 화랑도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한편 그 때 무관랑이란 화랑이 있었는데 그 역시 인망이 있어 거느리는 사도私徒들이 많았다. 무관랑은 사다함이 자신보다 나이는 적으나 정의正義로운 지도자라는 말을 듣고 만나기를 청하였다. 사다함을 대면한 무관랑은 사다함의 인성과 기개에 흡족하여 옛날 중국의 신릉군信陵君과 맹상군孟嘗君178) 에 비하면서 자신을 따르던 낭도들을 데리고 섬기기를 청하였다. 하지만 사다함은 연장자이고 인망이 있었던 무관랑인지라 거느릴 수 없다고 하여 무관랑은 사도들을 데리고 이화랑를 섬겼다. 

이화랑 역시 사다함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지소태후에게 사다함의 나이가 아직 장년에 이르지 않았지만 탁월한 지도력과 인품으로 스스로 수 많은 낭도들을 거르리기에 과연 국선國仙이라고 이를 만하다고 했다. 국선은 풍월주와 다른 계통의 화랑 우두머리이다. 신문왕 즉위년(681년) 화랑제도가 폐지되었다가 부활될 때 '국선'이 '풍월주' 대신 화랑의 우두머리로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지는 몰라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에는 풍월주라는 용어는 없고, 화랑의 우두머리를 국선으로만 표기하고 있다(이것이 곧 신라인이 쓴 신라와 고려인이 쓴 신라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현재도 '국선도國仙道'라는 무예가 수련되고 있다. 이 역시 화랑도花郞徒들이 수련했던 화랑도花郞道와 같은 무예이거나 유파를 달리하는 동시대의 무예로 볼 수 있다. 

지소태후도 사다함의 인품이 궁금하여 궁중으로 불러서 사람을 거느리는 방법을 물으니, 사다함이 말하기를 "사람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할 뿐입니다. 그 사람의 좋은 것을 좋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이에 지소태후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귀당비장貴幢裨將의 벼슬을 내려 궁문을 관장하게 하였다.                                                                                                                                                                                                                                          
178) 중국 전국시대의 4공자는 위魏나라의 신릉군, 제齊나라의 맹상군,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 그리고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다.
신릉군의 이름은 무기無忌이고 위나라 소왕의 아들이다. 신릉군은 겸손하고 어질어 자신을 낮추었으며, 선비들이 어질거나 불초하여도 구별하지 않고 예를 지켜 그들과 사귀었기에 그에게 선비들이 다투어 모여드니 식객食客이 3천이나 되었다고 한다.

맹상군은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시호이다. 제나라 위왕의 막내아들이며 선왕宣王의 이복동생인 정곽군靖郭君 전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000여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다. '계명구도鷄鳴狗盜'와 '교토삼굴狡兎三窟'(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잘 숨어 재난을 피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의 고사는 맹상군으로 부터 나왔다.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의 초빙으로 재상이 되었지만 곧 의심을 사게 되어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그의 수하 중에서 좀도둑질 잘하는 사람과 닭울음 소리를 잘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고사가 '계명구도'이다 
춘신군의 이름은 황헐黃歇이다. 초나라의 정치가이다. 진秦나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태자 완完과 함께 진나라에 인질로 가 있다가 계략으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태자 완이 왕(효열왕)으로 즉위하자 재상에 임명되어 20여년간 왕을 보좌하였다. 그의 세력은 왕을 능가하였으며, 순자荀子를 비롯한 많은 세객說客과 모사들을 식객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누이의 아들을 왕에게 바쳐 권신이 된 이원李園의 묘략으로 효열왕이 죽은 뒤 일가와 함께 살해되었다. 

평원군 조승趙勝은 조나라 무령왕의 아들이다. 혜문왕과 효성왕의 재상으로 있었다. 그의 첩 하나가 지나가는 절름발이를 보고 비웃었다고 하여 첩의 목을 베고 절음발이의 청을 들어준 후로 그의 휘하에 수많은 식객들이 모여 들었다. 또한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였을 때, 왕은 평원군을 초나라에 지원군을 청하기 위하여 사신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평원군은 지용을 겸비한 19명을 선발하였으나 마지막 한 사람을 고르지 못하고 고심하던 중 '모수'라는 식객이 나서서 자천을 하였다. 평원군은 누군지 몰라 물어 보니, 3년이나 식객으로 있는 모수라고 하여, 평원군은 "대체로 현명한 선비는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금방 밖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어찌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는가?" 하니 모수가 "일찍 주머니에 넣었더라면 지금쯤은 자루까지 나왔을 겁니다"라고 하면서 지금이 그 주머니에 넣을 때이니 뽑아달라고 청원하였다. 그리고 평원군의 모수의 기지로 '조초동맹'을 맺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로 모수는 상객이 되었고, 여기서 '낭중지추囊中之錘'와 '모수자천毛遂自薦'의 고사가 나왔다. – 사마천의 '사기' 참조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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