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어머니의 칫솔
보스톤코리아  2016-08-15, 11:35:42 
  날이 덥다고 말은 들었다. 그런데 이런 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 습해서 차라리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땀방울은 물줄기가 되어 등골을 훑고 흘러내렸다. 말매미인가, 찢어지는 울음은 한국 여름임을 알리고 있었다.  

  오래전 럭키치약의 신문광고를 봤다. 재미있어 카피 해놓았다. 여기 몇자만 옮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해야 겠다. 아직도 콜게이트 미제치약이 한국산 치약보다 좋은지 아닌지 그건 모르겠다.
 ‘미제와 똑같은 미국원료, 미국 처방으로 제조 되었습니다.’ ‘향과 맛이 좋습니다. 거품이 많이 납니다. 뒷맛이 깨끗합니다……’ 

  어머니의 칫솔은 언제나 낡아 있었다. 칫솔은 뭉개져 있었고, 칫솔자루는 휘어져있었다. 이를 닦을 적 마다 눈에 띄었던 어머니 칫솔 모습이다. 어머니가 이따금 입에 올리셨다. ‘그땐 왜 그렇게도 모든 물자가 귀했는지. 하다 못해 치약과 칫솔도 귀했으니 말이다. ’

 세월이 한참 흘러 치약과 칫솔이 훨씬 흔해졌다. 하지만 어머니의 칫솔은 여전히 뭉개져 있었다.  낙엽을 모두 떨 군 늦가을날 마른 나무가지처럼 보였다. 내가 부모되어서도 왜 어머니의 칫솔은 뭉개져 있었던가 알지 못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부모, 김소월)

  틀니를 끼운 어머니는 더 이상 칫솔을 사용하지 않으셨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셨다. 그걸 핑계 삼을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께 새칫솔을 사다 드린 적이 없다. 사다 드리고 새 치솔을 사용하지 않으셨을 게다. 여전히 어머니는 뭉개진 치솔을 고집하셨을 테니 말이다. 

  언젠가는 꼭 어머니께 새 칫솔을 선물하겠습니다. 어머니 평안하십시요.  

‘모든 일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누가 2:5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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