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별이 빛나는 밤에
보스톤코리아  2015-11-23, 12:45:38 
  가을이 깊어 간다. 겨울이 진격해 온다는 말과 같다. 비가 내렸고 빗물은 차가웠는데, 곧 개었다. 갠 맑은 가을하늘에 별들이 빛났고 쏟아져 내렸다. 

  어느 천문학자가 말했다. 연구대상인 별이 그에게는 더 이상 과학이 아니란다. 오히려 서정抒情으로 읽으려 한단다. 말이 그럴듯 하다. 별이 서정抒情인 것은 천문학자에게 뿐이랴. 윤동주에게도 별은 시詩로 나타났고, 알퐁스 도데에게도 별은 서정抒情이다. 내게는 이제야 별이 보인다. 감성으로 보인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해에 멀쩡한 눈에 한낮에도 별이 보이길래 의사를 찾았다. 눈眼에 레이저를 쏘아댔다. 안구眼球가 너무 말라, 금이 갔다나 뭐라나. 덕택에 눈앞에 별은 사라졌다. 내눈에 별은 유성流星처럼 사라져 버렸다. 

  몇해 전 새벽 우연히 봤던 그 별에 너무 놀랐다. 초승달에 걸려 있었는데, 인공위성인가? 비행기 불빛인가 했다. 새벽 남쪽하늘 별치고는 너무 컸고, 너무 반짝여 헷갈렸던 거다. 무슨 별이 그다지도 크고 빛나던가? 그 별은 계명성이라 했던가. 샛별이라 하던가. 금성이라 한다면 삭막하다. 오히려 샛별이라 불러야 서정적이고 더 반짝인다. 내게 별은 북두칠성과 북극성만 구별하고 볼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몇해 사이 내눈엔 샛별 뿐아니고, 별똥별도 이따끔 보인다. 게다가 몇개가 연달아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뭐, 그렇다고 별을 보면서 시인처럼 깊은 상념에 잡히는 건 아니다. 별 구경은 외상은 아닌데, 마냥 공짜로 구경하지도 않는다. 한참을 쳐올려 보노라면, 뒷목은 아프다. 목을 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한 노력과 수고없이 뭘 바라랴. 시인은 오년째 밤마다 환상의 별쑈를 즐기는 모양이다.

이씨氏 구멍가게, 외상 술값 갚은 날
뒷짐 지고 마당에 나와 쳐다보는 별빛이여
이 값은 얼마나 될까
오 년째 외상인데
(김원각•시인, 외상값, 산촌일기 중에서)

  별은 주위가 어두워야 잘 보인다. 이쪽이 환하다면, 별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전기불은 낮춰라. 그래야 보인다. 날이 흐리지 않다면, 별은 그곳에서 언제든지 빛을 발할 터. 구름에 가리지 않았다면 별을 볼수있다는 말이다. 구름도 없는데 별이 보이지 않는다면, 눈이 나빠 스물스물 거리든지 아니면 이쪽 불이 너무 밝은 거다. 그렇다고 별을 보자고 깜깜한데,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는 아니다. 빨찌산도 아닌바에. 그건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마나한 소리를 지껄였다. 참, 벌건 대낮에도 별이 보이면, 빈혈이든지 아니면 나처럼 안구가 말랐을 게다. 레이져 한방 받으시라. 날카롭게 찌르는 별빛을 받아 보시라. 별빛에는 별빛이 약일 게다.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심야방송이었다. 이종환인가, 김광한이던가. 디스크자키였다. 늦은 밤에 소녀들이 듣던 방송이었다. ‘껌좀 씹던 누나’들만 들었던 건 아니다. 나야, 소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닥 즐기지는 않았다. 잠자기 바빴고 너무 졸려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시작 시그날 음악은 뱃속 장腸들이 내려 앉는 듯, 아득하기 까지 했더랬다. 감미로운 음률에 얹힌 디스크 자키의 목소리는 굵지도, 그렇다고 얇지도 않았다. 뭉쳐지듯 흩어졌다. 깊은 밤 잔잔한 호수가에 쏟아져 내린 별빛처럼 슬쩍 뒤채이며 퍼졌던 거다.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심야방송에 엽서따위로 신청곡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전화신청도 받았다. 전화기 귀하던 시절 촌에서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웬 시외전화?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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