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4.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 (2)
보스톤코리아  2015-07-27, 12:11:35 
비버 전쟁(1640-1701) (계속)
이 전쟁은 1638년에 시작되어 60년 이상 지속되다가 1701년 몬트리올 평화협정 체결로 끝났다. 이 전쟁은 북미 원주민간의 다툼 중에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최대 규모 중의 하나로서 이로쿼이 연합은 이 정복 전쟁을 통해서 오늘날 오하이오 주 등 8개 주를 아우르는 본래의 영토의 열배 이상의 땅을 차지하여 지역 맹주의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전쟁에서 패한 인디언들중 상당수는 고향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한 예로 훗날 대평원의 전투부족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수우족도 이때에 이로쿼이 연합에 밀려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옮겨갔다.

이로쿼이 연맹
동부 지역에서 시작된 영국의 식민지 개척이 점차 서쪽의 삼림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인디언들의 삶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인디언 부족들은 사냥감들이 점차 고갈되어가자, 굶주림을 참아야 할지 아니면 전쟁을 벌여야 할지 또 아니면 서쪽으로 이주해서 그곳의 다른 부족과 갈등을 빚어야 할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북부 지역에 살던 이로쿼이 족은 다른 부족에 비해 유럽인들의 진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그들의 침범을 막았다. 1570년에 이로쿼이의 다섯 개 부족(Mohawk, Onondaga, Oneida, Cay- uga, Seneca 부족이 참가하였는데 1722년에 노스캐롤라이나에 살던 Tuscarora부족이 그곳 영국식민지와의 전쟁에 패한 후 옛 고향으로 돌아와 이로쿼이 연합에 합류하였다)이 연합해서 동맹을 맺고 일종의 민주적인 형태의 연방국가를 형성했다.  이 동맹에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각 부족의 대표자로 구성된 50인 협의회가 운영되었다. 연맹 소속 부족의 공동 관심사는 반드시 이 협의회를 거치도록 했으며 살인등의 중대사를 다루는 공동의 법도 제정했다.

동맹은 17세기와 18세기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비버 전쟁을 통하여 그들의 경제적 영토를 크게 넓힘으로써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모피 무역을 주도했으며, 18세기 중엽 영국과 프랑스가 북미대륙 식민지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일 때는 영국 편을 들기도 했다. 그 후로 영국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폰티악 전쟁에서도 인근 인디언 부족 대부분이 영국군에 맞서 싸웠으나 이로쿼이 연합은 영국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로쿼이 연합은 미국의 독립전쟁 전까지는 단단히 유지되었지만, 독립전쟁이 발발하면서 내부 균열이 발생하였다. 부족별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각 부족들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로 했고, 결국 Mohawk, Onondaga, Cayuga, Seneca은 영국 편을 들었고 Onei-da, Tuscarora은 독립전쟁을 벌린 식민지 편을 들었다.
이로쿼이연맹은 지금도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지해 오고 있는 부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미국과는 별개로 인디언의 전통 구기종목인 라크로스(lacrosse) 국제 경기에 독자적으로 선수를 파견하기도 하고, 미국 정부 여권과는 별도로 그들 부족명의의 여권을 발급하기도 한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에 대하여 주권국가 자격으로 선전포고를 한 적도 있다.

남동부지역 원주민과 유럽 정착민과의 갈등
버지니아의 남쪽에 위치한 캐롤라이나 지역에서의 식민지 건설은 1600년대 중반이후에 본격화되었다. 이 지역에는 투스카로라  (Tuscarora) 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초기에는 50년 이상  유럽 이주민들과 큰 충돌 없이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왔다. 그러나 170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원주민들의 땅을 더 많이 요구하게 되고 심지어 원주민을 상대로 노예 사냥까지 일삼게 되면서 원주민들이 정착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투스카로라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1711년부터 1715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전쟁으로   인하여 투스카로라 부족 중 많은 수가 사망하거나 노예로 팔렸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이로쿼이어족인 이로쿼이 연합 부족이 살고 있던 뉴욕 북부로 옮겨 가 기존의 다섯 개 연합국가에 이어 여섯 번째 연합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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