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소나기
보스톤코리아  2015-06-22, 11:47:29 
  빗방울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나기가 쏟아졌다. 시작은 소나기였는데 쏟아 붓던 비는 잦아들었다. 오락가락 내리는둥 마는둥 한동안 계속되었다. 가물던 초여름에 단비였지만, 추위도 데리고 왔다. 덕분에 감기기운이 들어섰다. 보스톤 비는 빗방울도 굵다. 잘못 맞으면 머리에 타박상 입을 수도 있겠다. 소나기는 여름에 제격이다.                     

해 지자 날 흐리더니
너 그리움처럼 또 비 내린다
문걸고 등 앞에 앉으면
나를 안고도 남는 너의 애정!
(유치환, 밤비)

  지난 주 졸문에서 봄비라 했다. 여름이 한창인데, 웬 봄비인지. 너무 짧았던 봄이 아쉬웠던 걸까. 내 경솔함이 봄보다 우습다. 이런 걸 퇴고推敲라 하던가.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글을 갈고 닦았다 했다. 그의 글은 철저히 고쳐지고 다듬어 졌다고 했으니 말이다. 너무 다듬었기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듯 싶다. 그의 소설, ‘소나기’의 마지막 대목이다.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이 대목은 기억력 시원치 않은 나도 또렷이 기억한다. ‘잔망스럽다’는 말이 꽤나 재미있어 그런가 보다. 처음 듣던 말이었고, 자주 쓰던 말은 아니었다. 분홍색 스웨터이던가. 계집아이가 입고 있던 옷 말이다. 참, 영화 ‘엽기적인 그녀’ 에서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을 뒤틀고 패러디했던 게 나온다. 대사를 대충 옮긴다.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알던 소년을 꼭 산채로 같이 묻어달라구…”. 영화의 주인공 견우가 잠결에 그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생각날 적마다 비적비적 혼자 웃는다. 소설보다 웃겼으니 말이다.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잘된 영화를 보고, 잘된 연속극을 보면 왜 소설이 팔리지 않는지 알 만도 하다. 도무지 한국소설이 이제는 재미가 없는 듯 싶다. 아내는 한국에 갈 적마다 ‘이상 문학상’ ‘동인 문학상’ 모음 따위를 사가지고 오곤 했다. 그런 아내도 더 이상 한국 소설책을 사오지 않는다. 연속극이 더 재미있으니 말이다. 

  생각난 김에 한마디 더 붙인다. 나타니엘 호손의 글 ‘큰바위의 얼굴’을 기억하시는가. 아주 옛적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을 게다. 바위산을 닮은 큰 인물이 나타날거란 믿음으로 소년 어네스트이 날마다 쳐다 보는 ‘old man view’ 말이다. 나도 어린 마음에 인상깊게 읽었더랬다. 배경이 된 ‘올드맨 뷰’가 우리 지역에 있는 줄은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다. 관심도 없었고  기억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헌데 그게 십 수년전에 무너져 내렸단다. 멀지 않은 곳인데, 직접 보기 전에 없어져 버렸으니 아쉽다. 떠나간 버스를 향해 손 흔드는 격이 되었다. 꿩 대신 닭은 아닌데, 나타니엘 호손의 거처였던 집을 방문해 봤다. 미니트맨 트레일 서쪽 끝 콩코드에 있다. 그의 옛 젊은 시절 사진의 모습은 꽃미남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를 만나니 사뭇 감회가 다르다. 유서 깊은 보스톤에 사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한여름 가만히 누워 빗소리 들으며 소설한편 읽는 재미도 삼삼할 게다. ‘큰바위의 소설’ 을 기다린다. 성경 한 구절이다. 번역이 예사롭지 않다. 매우 시적詩的이다.

‘소나기가 타고 올 길을 누가 텄는지, 먹구름이 천둥치며 쏟아져 내릴 곳을 누가 팠는지, 너는 아느냐?’ (욥기 38:25,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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