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86
보스톤코리아  2015-06-22, 11:44:36 
최홍희가 ‘태권도’ 창시자라면 황기 역시 ‘수박도’의 창시자이다. 세계 태권도계의 사람들은, 특히 최홍희가 설립한 ITF의 태권도를 수련한 태권도인들은 그를 태권도의 창시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물론 타관他館의 태권도인들도 황기를 수박도의 창시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결국 최홍희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을 통해서 홍보를 많이했기에 그들의 뇌리에 박힌 것이고, 황기는 자신의 무도수련의 기본 철학인 ‘수도修道’를 통해서 인생의 근원적 목표를 성취함에 있었기에 홍보가 덜 되었다. 결론적으로 최홍희는 태권도를 창시하지 않았고, 황기도 수박도를 창시하지 않았다. 둘다 모두 기존에 있던 무술에서 자신들이 터득한 기예와 철학을 더하여 새로운 무도의 이름을 작명하였다. 물론 둘의 작명 동기는 현저히 차이가 난다. 최홍희는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서, 즉 당시 최고권력자의 ‘격의’에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황기는 중국 권법/국술을 처음으로 배워서 익힌 무도인데 ‘당수도’라는 일본식 이름이 마땅치 않아서 고심하던 차 1956년 서울대학교의 나현성 교수가 소개해준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고 나서 수박도手搏道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수련된 ‘수박’은 아니다.

황기는 1914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미국에서 88세까지 장수하고 2002년 사망했다. 그는 1935년 남만주의 철도국에서 근무하면서 국술을 수련하였다.(확인된 바 없다면서 해방 후 초창기 관장들에 의해 각 관을 창설할 때 관세館勢가 가장 세면서도 무력武歷의 정통성 시비에 오르곤 했다.) 1945년 10월에 용산의 철도국 건물에서 무덕관을 창립하였다. 무덕관의 창시자인 황기는 철도국 직원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지관支館을 설립하였다. 특정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관세를 넓혀나가면서 초창기 5대관 중에서 가장 많은 수련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1953년 그는 ‘대한당수도협회’를 창설하였다. 1955년에는 서울역 부근에 무덕관 중앙본관을 새로이 개관하고 전국의 지관 수련생들과 함께 ‘한중친선국제당수도연무대회’를 열기도 했다. 1959년 최홍희가 이끄는 국군 태권도 시범단을 중심으로 ‘태한태권도협회’를 결성하자 그는 자신의 대한당수도협회를 ‘대한수박도회’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5.16 군사정변 후 포고령에 의해 사회단체 통폐합 시 무도계도 그 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통폐합을 거부하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무도인 수박도를 전파하기에 열정을 다 쏟아부었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는 미국에서 수박도를 수련하는 도장이 500여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뜻있고 자긍심을 가지게하는 것은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 미육군사관학교)에서 수박도를 무예의 정규과목으로 수업/수련을 하고있다. 물론 그의 노력 덕분이다. 또한 그의 수박도는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필리핀 등 약 25개국에서 10만여명이 수련하고 있다.

그는 수 많은 무예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자신이 쓴 무예서도 많이 전한다. 이에 그가 우리에게 남긴 무예서들을 통하여 그의 무도철학을 배워 본다. 
1945년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발간된 무예서가 황기가 지은 ‘화수도 교본’이다. 1949년에 나왔으며, 그에 의하면 화수도花手道의 ‘화花’자는 ‘화랑도’의 첫자를 딴것이고 또 꽃은 모든 자연계에서 가장 원만하고 화려하며, 모든 행복의 자연적인 발로이며, ‘수手’자는 당수도의 ‘수’를 택했지만 일반적인 손동작의 무예를 말함이며 동시에 사람을 뜻함이다. 약 3,000여부를 인쇄한 이 교본은 6.25 발발로 인하여 600여부 정도만 팔리고 나머지는 흐지부지 없어졌다. 그래서 사실 대중들 뿐만 아니라 무도인들도 잘 소장하지 못한 희귀본이다. 고로 그 가치는 대단하다.(이 교본을 바탕으로 1958년에 ‘당수도 교본’을 간행하였다) 그외 그는 1970년에 ‘수박도 대감’과 1993년에는 ‘무도철학’ 등을 편찬하였다. 

황기는 자신이 수련한 무도에 대한 명칭문제에서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의 무예경력에서 만주에서는 중국무술인 ‘국술’을 수련했지만 해방 후 무덕관을 창설하면서, 일본에서 당수도/공수도를 수련한 초창기 타관 관장들은 ‘공수도’라고 불렀지만 황기는 그의 무도를 ‘화수도’라고 정식으로 명명했다.(화수도 교본 – 1949) 물론 일반인들은 무덕관의 무도를 ‘당수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곧 ‘당수도’로 했다가 1956년부터는 ‘수박도’라고 했다. 
무덕관 창시자 황기의 무도철학은 “대자연의 원리원칙의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서 이에 대한 관심과 사상을 환기시켜서 모든 인류가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하여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는 습성을 양성하여 덕망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행복, 건강, 평화, 자유, 평등을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무도 철학 23쪽)고 후예들에게 남기고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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