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00회
보스톤코리아  2015-06-01, 12:16:54 
엊그제는 우리 집 뒤뜰의 작은 텃밭에서 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자란 부추를 뜯어 부침을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 작은 텃밭에 앉아 웃자란 잡초를 몇 골라 뜯어내며 내심 부추를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뭐 특별히 해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땅 주인이라는 것밖에는 그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당당하게 해마다 맛있게 뜯어 먹곤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음식보다도 채소를 좋아하는 나는 부추가 오르면 기다렸다가 부추를 뜯어 쌈장에 맛나게 먹던가 아니면 샐러드의 다른 야채들과 섞어 먹기도 하는데 그 어떤 맛보다 부추 특유의 향이 참 좋다.

처음 부추가 우리 집 텃밭에 심기어진 얘기를 하자면 이렇다. 어릴 적 친구가 곁에 산다. 한 7여 년 전 친구가 살던 집에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살던 집에는 뒤뜰에 텃밭이 있어 상추와 고추 부추가 있어 가끔 얻어먹곤 했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를 하게 된 큰 집에는 텃밭이 없었던 이유로 텃밭에 심기어진 부추가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것은 그럴 것이 미국 사람이 와서 산들 부추를 먹을 것도 아닌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 부추를 처음 옮겨 심어주신 분이 친구의 시어머님이셨기에 그냥 놔두고 오기 너무 아까운 까닭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이사하기 며칠 전에 친구 집에 있던 부추 뿌리를 우리 집 텃밭으로 옮겨다 심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이듬해 봄에 부추의 파란 새싹이 오르더니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더니 더 많이 싹을 늘려주고 있다.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특별히 텃밭의 부추를 위해 해준 것도 없이 이맘때가 되면 식탁이 푸르름으로 풍성해지고 넉넉해지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올해는 더욱이 긴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고 오른 첫 부추를 뜯으면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첫 부추로 부침 가루를 넣고 부침을 해먹었다. 

무엇보다도 흙내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더욱 고마운 마음이었다. 부추를 뜯으러 텃밭에 가서 앉으면 여기저기 오른 잡초를 하나둘 뽑게 되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으면 흙내가 콧속을 뚫고 들어가 온 마음과 몸과 정신에 퍼져 흐른다.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 어디에서도 쉬이 만날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는 귀한 친구이다. 우리 집 뒤뜰에는 큰 나무들이 몇 있는데 가끔 텃밭을 가게 되면 그 큰 나무들을 가슴으로 안고 한참을 함께 호흡하며 내 얘기를 들려주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온몸과 마음으로 퍼져 흐르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의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도시에서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주말에 '주말농장'에 가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친구가 기뻐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좋던지 나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주말에 시골 '주말농장'을 찾아 밭을 일구어 고랑을 만들고 이랑을 만들어 고구마를 심고 옥수수 씨앗을 심는다는 말에 나도 함께 가서 일하고 온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친구는 더운 날씨에 주말 농장을 찾아 뙤약볕에 땀을 흘려 일하며 몸은 매우 힘들었지만, 마음은 너무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의 갖가지 수많은 병은 흙내가 그리워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바쁜 일상에서 정신적인 여유 없이 살며 갖가지 많은 스트레스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니 어찌 병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렇듯 시간이 허락된다면 자연을 통해서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것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닐까 싶다. 직접 밭을 일구며 흙내를 맡는다면 더욱 좋을 테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산이나 들 그리고 바다나 그 외의 자연을 통해 치유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을 일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서의 자연과의 만남을.

요즘 주말이면 '주말농장'을 찾아 흙내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한국의 친구를 보며 내심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함께 즐겁고 행복하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 지난번에는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 하나를 보며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마른 땅에 옥수수 씨앗을 심었는데 한 주 후 다시 찾아가 보니 옥수수 새싹이 파랗게 오른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생명의 꿈틀거림은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며 '공생공존'하는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한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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