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4
보스톤코리아  2015-03-30, 11:21:07 
1940년대에 우리나라에 전파된 당수도108)는 해방을 맞이한 후 사회적인 혼란기의 틈을 타고 비약적인 양적 팽창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항상 우리의 무예가 있어서 우리의 선조들은 개인의 호신과 건강을 위한 ‘평화적인 형태’의 수련에서 부터 국방력을 강화하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군사용 즉 상당히 ‘폭력적인 형태’로 동전의 양면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다. 시대에 따라서 여러가지의 명칭으로 변천하기도 하였고 또는 다양한 형태의 무예가 공존하면서 전래되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보면 수박手搏, 격검擊劍, 사예射藝, 기마騎馬, 덕견이, 깨금질, 씨름 등의 전통 무예와 유희들이 일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선비들도 수련했다고 전한다. 그러던 전통 무예와 놀이들이 일제 식민지 동안 금기시되기도 하고 또 일본의 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밀려나면서 일부의 전통 유희, 특히 무예는 사찰이나 초야에서 비전하는 것으로 무예인들의 자긍심을 더해준 면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때를 같이 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해방을 맞게 되었다.

109) 동시에 해방과는 사실 전혀 무관하게 시대적으로 그 1945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일본에서 배운 공수空手를 귀국하여 체계적으로 지도하면서 초야에 묻힌 전통무예는 사회적으로 더욱 멀어져만 갔다. 동시에 초창기 5대문파
110) 는 일반인들의 입관을 공개적으로 받아드리면서 수련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였고 분관이나 지관 또는 초창기 관館에서 파생된 관館과 도장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바야흐로 태권도는 ‘국기國技 태권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에 앞서 최홍희가 당시 수련하던 무술인 공수도(택견이나 당수 –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무술, 무덕관의 창시자 황기는 일본에 간 적도 없고 가라데<당수나 공수>를 배운 적도 없지만 자신이 만주에서 수련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당수도’라고 불렀다. 즉 황기<무덕관>의 당수도와 일본 유학파의 공수<당수, 공수와 당수는 같은 가라데이다. 일본말은 훈독을 하기 때문에 空手나 唐手 모두 ‘가라데’로 읽는다)를 ‘태권도跆拳道’로 개명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 부터 재가를 받고 친필 휘호를 받으면서 명칭은 확정되었다.111)   
108) 당수도는 공수도다. 일본에서는 당수도가 공수도로 1935년경에 정식으로 개명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유학하면서 가라데를 수련한 뒤  귀국하여 창설한 관館들, 청도관, 송무관, 지도관, 창무관은 대부분 공수도라고 불렀고 무덕관은 당수도라고 불렀다. 일반인들은 혼용하여 불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수와 공수가 같은 무술이 아닌 별개의 무술로 오인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당수는 일본에서 전래되었고 공수는 중국에서 전래된 무술 또는 그와 반대로 공수는 일본에서 당수는 중국에서 유입된 무술로 인식되기도 했다.   
109) 무예인들의 전통 무예수련 면에서만 본다면 해방은 정말 갑작스러운 대사건이었다. 수 많은 선각자들이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온 국민들이  독립을 열망하였지만 해방은, 일본의 항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맞은 것이다. 당시 미국이 주도했던 연합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해방이 되었을까?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을까? 1945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들어온 가라데(空手)가 우리의 전통무예의 기상과 기술에 제압 당하면서 태권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 단절될 수 없는 역사, 가정이 없는 역사, 복합적이고 변증법적으로 발전(변천)되는 역사는 결국 우리의 태권도를 세계속에서 가장 으뜸가는 가장 많은 인구가 수련하는 ‘무도’와 인류의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에도 정식 종목으로 인정 받는 ‘무도 스포츠’로 발전시켜 놓았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되고 전파된 태권도의 뿌리에는 우리민족의 우수한 기상氣像과 무예인의 특출한 기상技想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110) 최홍희가 창설한 오도관도 포함하여 6대문파라고도 하지만 최홍희의 오도관은 청도관 출신의 부하들과 함께 군대에서 창설하여 군軍에서, 특히 파월장병들에게 수련시켰다. 후일 거의 전군에서 태권도를 의무적으로 수련하였지만 ‘관館’의 소속감은 전혀 없는 수련이었고, 이른바 체력단련과 전투력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수련되었다. 물론 국군체육부대나 각군에서 선수 양성도 하고 전문적으로 수련하였지만 그 역시 관館의 소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111) 김용옥의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제14 – 18 가름에 최홍희는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유에서 태권도의 개명을 하기로 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알랑방귀를 뀌기 위하여 개명했다고 비판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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