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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의 실체는 누구인가?
보스톤코리아  2015-01-26, 12:54:06   
독일의 역사가 랑케는 모든 고대사는 많은 개울이 호수로 흘러 들어가듯 로마의 역사로 흘러 들었고 모든 근대사는 다시 로마로부터 흘러 나왔다고 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된 로마 제국의 업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로마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로마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서로마 제국은 갑자기 하루 아침에 망해버렸다. 로마를 망하게 한 훈족의 침입은 유럽 역사에서는 정말로 획기적이고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도대체 훈족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18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역사가 드 기뉴가 훈족의 원류가 흉노라는 흉노, 훈 동족설을 발표한 이래로 찬성과 반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왔다. 1970년에 모리 마사오는 주로 동족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려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흉노의 중국식 발음은 ‘혼누’라고 하여 ‘훈’에 가깝게 들린다. 중앙 아시아 각지에서 흉노는 정복자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훈’족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고대 일본이 북방 기마 민족에게 정복당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동경대학 교수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는 고고학 자료를 들어 동족설을 주장하였다. 동족설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은 모리 마사오의 주장처럼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필자는 이미 7회에 걸쳐 훈, 흉노, 신라, 가야의 친연성을 게재한 바 있다. 

이번에는 훈족의 지난 과거를 알아보기 위해 흉노와 중국간에 수백년을 이끌어온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BC3세기부터 AD2세기 말까지 흉노와 중국은 끊임없는 소모전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흉노는 3번에 걸쳐 전쟁의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면 거의 예외 없이 서쪽으로 도주하여 아랄 해 부근의 중앙 아시아로 이주해가곤 하였다. 

물론 일부는 동쪽으로 이주해서 신라 가야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한무제 년간인 BC121년에 위청과 곽거병이 흉노 좌현왕, 우현왕을 무찌르고 우현왕의 아들 김일제 모자가 포로가 된 사실은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해서 장장 300년이 넘게 흉노와 한나라는 이기고 지는 소모전을 계속하였다. 

10년 후 인 BC111년에 한나라 장수 공손하, 조파노가 수 만의 군사를 이끌고 흉노를 침공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BC103년에는 조파노의 3만명 군사가 전멸당했다. 

BC99년에는 이광리가 흉노와 싸워 패전했고 이릉(李陵)은 흉노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이릉은 후일에 탁발 선비의 시조가 되는데 탁발 선비는 흉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흉노를 중국 북방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역할을 한 민족으로 고구려와 자웅을 겨루던 북위를 세운 민족이다. 

이릉은 젊은 시절부터 이사 장군 이광리와 함께 흉노 전쟁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흉노의 배후를 공격하다 오히려 흉노에게 포위되어 세가 다하자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흉노에게 항복하였다. 흉노 선우가 자신의 탁발 공주를 이릉에게 시집보냈는데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후손들이 탁발 선비의 시조가 되었다. 

BC97년 이광리가 24만의 대군으로 출병했지만 대패하고 이광리도 사로잡혔다. BC87년 한무제는 흉노 정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유한을 남기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BC71년과 BC68년에 몽골 초원에는 대규모 홍수와 폭설로 인하여 수 많은 흉노 족이 목숨을 잃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북쪽의 정령(돌궐), 서쪽의 오손, 동쪽의 오환이 흉노를 공격하였다.

흉노 호연제 선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떠나버렸다. 이것이 흉노의 1차 서천이다. 

한나라 선제(BC74~BC49) 때 흉노는 호한야 선우의 동흉노와 질지 선우의 서흉노로 양분되었다. 동흉노가 한나라와 연합하려 서흉노를 공격하자 질지는 자기를 따르는 3,000명 정도를 이끌고 서쪽 강거 쪽으로 이주하였으니 이것이 2번째 서천이다. 

후한 광무제 때 흉노는 선우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포노 선우의 북흉노와 일축왕 후호한야 선우의 남흉노로 갈라진다. 남흉노는 동한(東漢)과 연합하여 북흉노를 공격하였고 동한 장제 때(AD94) 두헌 장군이 북흉노를 격파하고 선비족 단석괴가 북흉노를 쫓아 서역으로 밀어냈으니 이것이 3번째 서천이다. 흉노는 서쪽으로 밀려난 후 100여년이 넘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400년이 더 되는 긴 세월을 한나라와 끊임없는 소모전을 치른 경험을 살려 백여년 동안 힘을 비축한 것이다. 

중앙 아시아로 옮겨간 흉노의 서쪽에는 강거가 있었고, 남쪽에는 월지국이 있었지만 흉노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휴식 중에도 흉노는 강거를 넘어 서쪽의 알란족과 국경을 마주하였다. 

흉노가 강거로 진입하자 알란족은 흉노에게 밀려 서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북안 돈강의 동쪽부터 아랄 해까지를 영토로 삼았다. 

알란족은 흉노와 같은 유목 민족으로 기마에 능했고 소와 말고기와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는 용감한 민족이었다. 알란족에 대한 훈족의 공격은 AD350년에 시작하여 AD375년에 끝이 났다. 돈강 동쪽 지역은 모두 훈족의 영토가 되었고 훈족의 세력은 알란이 합세하면서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돈강 서쪽에 살고 있던 사르마트 족은 힘 없고 약한 민족으로 훈족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사르마트 족은 용맹한 스키타이 족과 아마존 여인국이 예전에 집단 결혼해서 생긴 민족이었다. 스키타이가 중앙 아시아를 떠나 서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아마존 부족의 완강한 저항을 받고 한바탕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 스키타이가 얻은 수확은 적군의 시체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 시체들은 하나같이 오른쪽 가슴이 없는 여자들이었다. 아마존은 여인국이었고 군사들은 모두 여자였던 것이다. 

희랍어로 마조스(mazos)는 유방을 의미하고 ‘a’는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사로 아마조스(amazos)는 유방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여자들만의 여인국이라는 뜻이다. 희랍의 유명한 의사이며 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에 아마존 여인들을 기록하였다. 

“아마존 여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딸의 오른쪽 유방을 불에 지져 없애 버렸다. 이는 오른쪽 유방이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하여 오른쪽 어깨와 팔로 모든 힘을 더 집중시키려 한 것이다.”

훈족은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현지인과 통혼을 통해 이민족과 융합을 시도하였다. 사르마트를 격파한 다음에 아마존의 여인들이 훈족의 자손들이 번창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제 훈족은 우크라이나 초원의 동고트 제국, 서고트 왕국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동서 로마와 자웅을 겨루게 된다. 

이상의 내용은 흉노가 훈족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역사 기록에 근거하여 전개해본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훈족은 아시아에서 온 기마 유목 민족이었다는 것이다. 

서기 4~5세기에 아시아 유목민으로 중앙 아시아에 진출한 민족은 오로지 흉노 뿐이었다. 돌궐족 역시 이곳에 출현하지만 아주 훗날의 일이다. 

신라, 가야는 훈족과 조상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훈족의 본태는 아니었다. 흉노가 훈족의 원류였다.


저자주: 이상으로 ‘김씨의 뿌리’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애독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 달 후에는 찬란했던 ‘신라 황금 문화’를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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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의견목록    [의견수 : 2]
 동산선생 2016.04.29, 01:01:41  
이번에 불가리아 여행을 하다가 소피아의 국립역사박물관에 황금 유물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리아야 말로 옛날 트라키아 지방이더군요. 스키타이보다는 서쪽이어서 약간은 다르지만 여전히 엄청난 황금유물이 고분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김선생님 연구에 지지와 박수를 보내면서 간련 연구를 부탁드려도 돨까요? 참고로 제가 인용해놓은 사이트를 보시지요.http://sunonthetree.blog.me/220685401931
IP : 36.xxx.31.107
 sogood 2015.01.29, 21:12:55  
잘 읽었읍니다
IP : 66.xxx.2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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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신드롬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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