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붉은색 우체통
보스톤코리아  2014-12-15, 12:08:05 
아내는 김장을 담궜다. 지난달 말末이었다. 김장이래야 몇 포기 일테지만 그래도 힘겨운 일인건 안다. 지켜만 보던 나는 눈만 껌뻑였다. 오래전, 내 형님은 구덩이를 팠고 아버지를 도와 김장독을 묻었다. 나야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쳐다만 본다. 

  십이월,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크리에 집안팎 장식이 볼만하다. 전기값이 만만치 않을게다. 별스런 걱정에 혼자 쓴웃음 짓는다.  이른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이 배달되는 시절이기도 하다. 이젠 한두장에 그친다만 말이다. 보내지 않았으니, 받을 기대도 없다. 쓰고 보내는 일은 중노동이다.  이 지면을 통해 성탄절 카드로 연하장으로 인사를 대신 한다.  비싼 지면을 사적私的으로 썼다. 

복된 성탄절과 알찬 연말연시를 맞기를 간절히 빈다.
  보스톤지역 우체국은 은근하다.  오히려 푸근하다는게 옳은 표현이다. 시티마다 타운마다 우체국이 번화가에 있다. 겉과 안은 모두 정주고 픈 건물들이다. 웅장하지 않고, 다소곳하다 해야 할듯 싶다. 검이불루(儉而不陋)라는 말이 그럴듯 하다. 검소하고 소박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누추한 건 아니란 말이다. 옛적 우리네 한국우체국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하지만 페드랄익스프레스나 디에치엘, 유피에스 우편물 수거함이 더 위용당당하다. 우체국 짙푸른 우체통은 색이 바랬다. 이젠 늙어가는듯 싶다. 구석으로 몰려 종가집 한옥처럼 덩그랗게 자리만 지키고 있는 거다. 젊고 빠른 페드엑스에 밀리고 있으니,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겐가?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쉬움은 크다. 우체국이 노쇠해간다.  

  청마 유치환 선생이다. 이영도시인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 했다. 연애편지인데,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우체국에서 보냈을게다. 우체국은 영화에 나오는 체구 작은 모습일게다. 한적하기가 엷은 졸음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우체통은 붉은 색이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여전엔 우편엽서도 편했다. 손바닥만 하던 것 그것 말이다. 짧게 쓴 엽서를 붉은색 우체통에 넣으면 마음은 언제나 아득했더랬다.  제시간에 도착 할겐가? 받는 사람의 표정이 먼저 떠올랐다. 성탄절 카드와 연하장은 페드엑스로 보내지는 않는다. 연하장은 역시 우체국에서 보내야 제맛이다. 성탄절 카드를 붉은색 우체통에 넣고 싶다. 연애편지를 보내는 것은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엽서 보냈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참 요샌 일반 우편물 우표값이 얼마더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데살로니카 후서 3:17)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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