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57
보스톤코리아  2014-11-24, 12:45:38 
마상육기의 마지막 기예는 ‘마상재馬上才’이다. 이 마상재는 문자 그대로 말위에서 여러가지 재주나 재기才技를 부리는 동작을 말한다. 대체로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의 중심 세勢로 나누어서 연습을 하며 그 재기를 그냥 시연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전에 활용을 한다. 

제1세는 달리는 말 위에서 서거나 서서 삼혈총을 쏜다. ‘징비록懲毖錄’94) 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내금위 조웅이 용감하여 능히 말 위에 서서 달리면서 적을 죽일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2세는 좌우로 말을 뛰어 넘는 것으로 속칭 좌우칠보左右七步라고도 하며, 땅에서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마상에서 안장을 끌어 안고 오른쪽으로 몸을 뛰어 넘으면서 몸이 말의 배에 닿지 않고 발은 땅에 끌리지 아니한다. 또 왼쪽으로도 말을 뛰어 넘으며 세 번 혹 네 번 하는 동작으로 정해진 수가 없이 한다.  제3세는 말 위에서 도립을 한다. 즉 마상에서 거꾸로 서기를 하되 이마를 말목의 왼쪽에 심는다. 제4세는 말 위에서 가로누워 죽은 체 한다. 전장에서 불리할 때 급히 말머리를 돌려 몸을 뒤집어 가로누어 거짓 죽은체하는 기만술이다. 제5세는 좌우 등자 뒤에 몸을 숨기는 장니리障泥裏를 한다. 즉 등자 뒤에 몸을 숨기고 손으로 모래와 흙을 움켜 쥐고 어지러히 던지며 발꿈치를 걸고 거꾸로 끌려가는 것을 말한다. 좌우 양쪽에서 할 수 있다. 제6세는 세로 누워 말꼬리를 베고 눕는데, 좌우로 몸을 감추거나 좌우로 넘나드는 것을 구분하여 여덟 가지의 세로 하기도 한다. 
이상의 기법을 단마單馬를 사용하기도 하고 쌍마雙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쌍마를 사용할 때는 서로 엮어서 사용하기에 모든 자세와 동작이 동일하다. 

보군步軍들이 입는 보예관복도설步藝冠服圖說에 보면, 무예도보통지 24반에서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낭선, 쌍수도, 예도, 제독검, 본국검, 쌍검, 월도, 협도, 등패, 곤방, 편곤을 익힌 자는 모두 전건(모자), 망수의(윗저고리), 또는 청홍황색의 얼룩무늬옷과 청홍황색의 바지와 버선을 갖추어 입는다. 다만 왜검, 교전, 권법을 익힌 자는 감두를 쓰고 망건을 풀고 실로 상투밑을 묶는데, 마치 지붕있는 가마의 호로박꼭지와 같다. 옷과 바지와 버선은 같다. 마군馬軍들의 복장인 마예관복도설馬藝冠服圖說에 보면 기창騎槍, 쌍검, 월도, 편곤을 익힌 마군들은 모두 투구와 갑옷을 입는다.
격구를 할 때 입는 복장을 정해 놓은 격구관복도설에는 발립, 삽취우, 호수의, 홍점리, 이두속, 광조대, 비저, 사구 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마상재 시 입는 복장은 마상재관복도설에 나오는데 전립이나 투구를 쓰고 홍이나 황색의 호의(더그레, 긴 조끼와 비슷하다)를 입고 같은색의 바지를 입고 옹혜(가죽신의 일종)를 신지 않는다.   
이상이 무예도보통지에 실려있는 무예24기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다음에는 조선의 후기를 지나 말기로 들어가면서 무예가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살펴본다. 

94) 징비록은 서애西厓 류성용이 지었다. 1592년에서 1598년까지의 7년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나서 자신을 징계하며 써서 후세에 길이 남겨 후환을 없애자는 동기에서 기록한 쓰라린 반성의 저술이다. 징비懲毖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은 우리나라 국보 제132호이며 경상북도 안동에 소장되어 있다. 류성용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칩거할 때 저술을 시작하여 1604년(선조37년)에 마쳤다. 책의 내용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배경, 자신과 조정의 잘못과 실책, 백성들의 임금과 조정에 대한 원망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처음 간행은 그의 아들 류진이 ‘서애집’과 함께 1633년(인조11년)에 간행하였다. 다시 1647년에 독립된 16권7책으로 간행하였다. 1695년(숙종21년)에 일본에서 중간되었고, 1712년(숙종38년)에는 일본에서 간행되는 것을 경계하여 수출을 금지하였다. 1936년 안동 하회마을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류성용의 자필 필사본을 영인하여 출간하였다. 최병현의 영역본도 있다.(The Book of Corrections, 2003년) 김흥식이 옮긴 국역집 등이 있다.(서해문집, 2003년) 임진왜란의 전모를 비교적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에 임진왜란의 많은 기록물 가운데서도 가장 귀중한 사료史料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이며, 2점의 보물 건축물과 국보로는 징비록과 하회탈(제121호) 등 2점 소장하고 있다. 하회마을을 2010년7월31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확정하였다.(브라질에서 개최된 제34차 회의에서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결정되었다) 하회마을은 하회 류씨 집안의 발상지이며 서애 류성용과 격암 류운용(류성용의 형)이 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터를 잡고 살아 왔으며 대부분이 풍산 류씨들이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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