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 빠름
보스톤코리아  2014-05-29, 20:24:30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건 과히 즐거운 일이 아니다. 마주 앉은 아내와 ‘빨리 빨리’ 정신에 대해 느리고 게으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기다리기 지루했으니 그저 객적은 소리하고 있었던 게다. 

중년사내가 들어 오는 게 보였다. 자리를 찾으면서 그가 큰소리로 물었다. ‘빨리 되는게 뭐예요.’ 주인 대답이 간결하다. ‘냉면’.  자리에 앉으면서 손님이 주문했다. ‘그걸로 줘요.’ 식탁 의자를 당기면서 그가 재촉했다.  ‘빨리 주세요.’ 주방을 향해 주인이 소리쳤다. ‘물냉하나, 빨리요.’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받는 일련의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런걸 탠덤이라 하던가. 물컵을 입에 대던 아내는 물을 쏟을 뻔했다. 나는 웃느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이었으니 말이다.  헌데,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왔는지, 손님이 냉면을 훌훌 들여마셨는지 그건 기억하지 못한다.

중년사내를 흉보는 건 아니다. 사뭇 식당 손님을 이해할수 있었을테니 나와 아내가 웃었던 거다. 역시 내 핏줄엔 한국인 피가 흐른다. 매우 빨리빨리 돈다. 그러니, 내 심장은 언제나 바쁘다. 성질이 급하다는 소리다. 케이티엑스가 무지 빠른 모양인데, 완행열차를 타고 역마다 쉬어가는 여행도 그럴듯 하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국화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모를 뻔했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상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는 모를 뻔했지’
(완행열차, 허영자)

한국티비에서 봤다. 무슨 전화기 선전문구다. “빠르-음. 빠르-음’. 역시 전화건 무슨일이건, 빠른게 최고의 덕목인게다. 아직도 그 선전 나오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큰변을 당한 한국사회에선 백가쟁명식 논의가 활발하다. 이래선 안된다는 말이고,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시카고 한인 언론인이 쓴 컬럼을 읽었다. 그의 글은 통렬하다. ‘스스로 통렬한 자아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잘 짚었지 싶은데, 그의 논조에 수긍하면서도 한구석 억울하다. 빨리빨리 문화에 백퍼센트 책임을 돌렸기 때문이다. ‘빠름’이 큰 곤욕을 치루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빨리빨리 문화가 어두운 면이 있을지언정, 그렇게 살아 왔고 그 길 만이 살아갈 구멍이지 않았나. 물론, 이제는 구멍난 양말 기우듯, 헛점은 메워야 한다. 속도전으로 밀어 부쳐 곳곳에 패인 누더기 고속도로 보수공사 하듯 말이다. 하긴 이제는 한박자 늦추기는 늦춰야 한다. 그럴때 인데, 너무 늦은 반성은 아닌지 모르겠다.

선운사 화장실이 그렇게 운치가 있단다. 느긋히 앉아 즐길수 있는 장소라 했다. 가보지 않았으니 알수 없다. 완행열차를 타고 선운사에 가는 상상은 느리고 한가롭다. 빠름 이야기 하다가 말이 느려졌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아가 8: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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