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 사고지 (史庫址) 답사기 > 2
보스톤코리아  2014-04-21, 12:36:17 
우리가 오대산에 간 것은 상원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을 보는 일 보다 오히려  오대산 사고지를 찾아 조사하는 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와 상원사의 중간 지점에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후 실록청에서 태조대왕에서부터 제 13대 명종대왕 까지의 역대의실록을 재인하여 선조 39년(1606)에 오대산의 월정사 경내에 사고를 짓고 역대실록을 봉안해 왔던 것이다.  사고가 있었다는 그곳에 암자 하나가 보이기에 무턱대고 암자로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스님은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학입시를 준비 하기위해 강릉에서 와 있다는 여고생이 나와서  안내해 주는 것이다. 여고생의 안내로 암자와 사고의 건물이 있었다는 일대를 샅샅이 살펴 보았다

그런데 사고가 있었던 그 자리에는 주추돌하나 보이지않았고 옥수수밭으로 변하여 옥수수가 길이 넘게 자라고 있었다.  상전이 벽해( 桑田碧海)  라하더니 사고의 건물은 이미 파괴 된지가 오래되어 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역사가 오래되고 세월이 많이 지나서 가 아니다. 한일 합방 후 일본인이 와서 오대산 사고에 봉안 되었던 역대왕의 실록과 기타 도서를 몽땅 일본으로 가저가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에 주어 조선사를 연구케하고 사고를 폐쇄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가저갔던 오대산 사고본은 1923년의 관동대지진때 다 불타 버린것이다. 사고가 없어진 후에 무주공터가 된 그자리에는 암자 하나만 남았고 그 터는 채마밭과 옥수수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일본에 빼았긴것이 어디 이조실록뿐 이겠는가. 사찰과 암자도 피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라를 빼았겼으니 남아날것이 있었겠는가 오대산 사고의 장서의 피해에 대하여는 필자의 <한국도서관사>와 서울대 신문에 발표한 일이  있어서 여기서 다시 설명치 않기  로 한다.       모처럼 기회가 생겨서 찾아간 사고지 에서 이렇다할 수확도 없이 헛탕만치고 옥수수밭에 서서 사진만 한장 찍어 가지고 상원사로 향했다. 

 <오대산 사고지 답사기> 
 -상원사 에서-
상원사에 가는 도중에는 사람은 한사람도 볼수가 없었다. 말그대로 정막강산이었다 청산계곡(靑山溪谷)을 흐르는 냇물은 거울같이 맑았고 아침햇살을 받은 수석(水石)은 부드럽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명산유곡을 동천별계 (洞天別界) 라고 하더니    바로 거기가 정토(淨土)인 것 같았다. 그 옛날 신라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현신을 보려고 명산유곡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다가 그곳에 와서 절을 짓고 수도하였던 곳이라고 전한다. 우리가 상원사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경이다. 절에서 우리가 간다는 기별을 받았는지 주지스님이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주지스님의 설명은 상원사가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의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文殊普薩)의 수계(受戒)를 받고 가사(架娑)와 사리(舍利)를 얻어 가지고 돌아온 자장율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짓고 수도한 것이 상원사의 기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상원사가 신라 선덕여왕 23(724)에 창건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5년 (636) 당나라에 유학하였다가 동왕 12년(643) 에 신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상원사가 724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오대산이라는 명칭은 후에 자장율사의 고사에 따라 중국의  오대산에 빗대어 주어진 명칭인 것 같다. 어쨌든 옛날의 법당건물은 여러 전란 으로 다 소실되고 지금의 건물은 해방후에 새로 건축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법당의  건물은 별로 장엄하지가 않았다. 상원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24년 (726) 에 주조하였다는 대동종이 있어 유명하다.  그 동종은 서울 보신각에 있는 대종만치나 큰종이다. 그런데  종의표면에는 운학문 ( 雲鶴紋)의 도상(圖像)과 선관이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비천도(飛天圖) 가 그려저 있어 더욱 고상해 보였다. 주지스님의 말은 역사가 오래돤 대종이지만 그 소리가 은은하고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였다. 주지스님은  우리를 안내하여 법당으로 들어가 불전뒤의 칸막이를 열고 대장경이 들어있는 책궤를 열어보였다.  대장경 여러책 이 궤에 가지런히 넣어저 있는데 모두 황색표지에 붉은 끈으로 메어저 있고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새 책 들이었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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