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31 회
보스톤코리아  2014-01-27, 11:41:49 
버릇이 되었다. 집에서 TV를 시청할 때나 병원에 건강 진료를 받으러 갈 때 그리고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잊지 않고 챙기는 물건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뜨개 실과 대바늘과 코바늘을 챙기게 된 것이다. 요즘이야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마트 폰이 있어 어디에서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 견딜만하지만, 오래전에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지루함을 채우느라 놓여진 잡지나 신문을 펼쳐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뜨개질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겨울방학이면 손뜨개로 모자와 목도리 장갑을 잠을 설쳐가며 밤새 뜨다가 엄마에게 야단맞은 기억도 있다.

처음에는 기다림의 시간을 달래려고 시작했던 뜨개질이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게는 아주 특별한 '뜨개질 명상'이 되었다. 무슨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마음을 달래며 다스리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어느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누군가에게 꺼내고 싶지 않고 때로는 혼자서 삭여야 할 일들이 있지 않던가. 그럴 때 그 어느 방법보다도 내게는 뜨개질이 마음의 평온을 찾아주는 좋은 방법이 되었고 여유로운 시간으로 안내해주는 안내자였다. 이제는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처음 뜨개질을 배웠던 때는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게다. 다섯 살 터울의 바로 위의 언니는 손재주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열한 살 차이의 둘째 언니는 재봉틀에서 무엇인가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막내 언니는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한 동네의 옆집 언니가 막내 언니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겨울방학이면 뜨개질을 늘 했던 기억이다. 그때 옆에서 옆집 언니에게 배우며 제일 쉬이 배울 수 있는 목도리 뜨는 연습을 시작해 모자도 뜨고 장갑도 떠보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겨울방학이면 맘에 드는 색깔의 털실을 찾아 뜨곤 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겨울방학이면 즐겨했던 뜨개질을 그 후로는 잊고 살았다. 그리고 한참 후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 처음으로 다시 뜨개 실과 바늘을 찾게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었다. 정말 아이를 낳으면 제대로 잘 키울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때의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태교를 위한 클래식 음악을 참으로 많이도 들었었다. 노래를 잘 부를 줄 모르지만, 유행가 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했던 터라 그 시간에 필요한 선택이었나 보다.

 그렇게 태교를 위해 클래식 음악과 함께 뜨개질을 시작했다. 하얀 구정 뜨개 실과 코바늘을 사서 성경 구절의 '믿음, 소망, 사랑'의 글자를 세로로 새겨 넣으며 가느다란 실로 몇 날 며칠이 아닌 아기가 태어날 때쯤까지 똑같은 구절의 것을 5개를 떴다. 그리고 첫 아이(딸아이)가 태어난 후 그에 어울리는 액자를 선택해 표구해서 시댁 가족들에게 선물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다시 구정 뜨개 실로 그 문구를 넣어 떠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아기를 갖은 엄마이기에 아기를 위해서 그 얇고 긴 뜨개 실로 한 땀 한 땀 '믿음, 소망, 사랑'을 새기며 올린 간절한 기도인 것이다.

그리고 세 아이를 키우느라 또 뜨개질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며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렇게 다시 뜨개 실과 대바늘 그리고 코바늘을 사서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숄을 뜨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에도 여행하게 될 때는 잊지 않고 두꺼운 털실과 뜨개 바늘을 챙겨다니곤 했다. 그것은 겨울을 위한 준비로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도 여지없이 털실과 뜨개바늘을 챙겨서 간다. 오가는 전철 안의 의자에 앉아 멀쓱하게 서로 바라보는 일보다 뜨개질로 집중하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산행을 시작하며 겨울에는 색색깔의 빨강, 노랑, 파랑, 오렌지 등 원색의 털모자가 늘기 시작했다. 내가 손수 짜서 쓰는 그 기분은 말할 것도 없이 즐겁다. 하지만 내가 손 수 정성스럽게 짠 모자를 필요한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일 게다. 그래서 몇 년 전 아는 지인이 안내해주셨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프리카의 신생아들을 위한 모자(순면 뜨개 실)를 뜨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작은 모자 하나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이 내게 주신 특별한 선물인 '달란트'를 다른 이와 나누는 '달란트 기브'는 참으로 감사와 축복이 아니던가.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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