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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월든 호수에 가고 싶다
보스톤코리아  2013-09-13, 23:02:54   

답답한 한국뉴스가 싫었다. 컴퓨터 파워버튼을 누르자 곁에 있던 가을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진다. 계절 나름의 맛이 있지만 가을은 독특하다. 깊게 푸른 하늘, 바삭바삭한 느낌의 공기, 맑은 바람에 감싸인 햇빛. 겨울과 여름을 지나 만난 가을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날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문득 월든 호수에 가고 싶었다.


차를 몰아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한 호수에는 유난히 소나무와 솔방울이 많다. 여전히 수영을 즐기는 사람, 카약을 타는 사람, 그리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정지된 화면인 듯 느렸다. 가을날, 자연주의자 헨리 소로우도 바로 이런 느림을 이 호수에서 느꼈을까. 그래서 가을 월든 호수를 다이아몬드보다 더 사랑스럽다 했나 보다.


책 ‘월든’과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알려진 헨리 소로우는 1845년 7월 월든에 둥지를 틀었다. 오두막을 짓고 자연을 벗삼은 단순한 삶의 실천장소였다. 2년 2개월 2일을 그곳에서 보내고 콩코드로 돌아갔다. 이 때의 사색과 집필을 통해 유명한“월든”을 추후 출간할 수 있었다. 


20여분만에 헨리 소로우의 월든 호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운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지 시간과 거리의 짦음만이 그리고 빠름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긴 시간을 들여 월든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 중의 한 명이 한국의 시인 류시화다. 그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15년 전쯤의 겨울날, 뉴욕에 머물고 있던 나는 자연주의자 소로우가 숲속의 생활을 실천한 월든 호수를 보러 가기 위해 보스턴행 기차를 탔다. 지도가 있었지만 초행길이라 앞좌석의 미국인에게 월든 호수가 있는 콩코드 지역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호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보스턴 기차역 바로 옆 시외버스 터미널에 콩코드 가는 버스가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의 설명대로 금방 버스 타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얼마 기다리지 않고 콩코드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날따라 폭설이 퍼부어 눈 많기로 유명한 동북부 지역의 겨울을 실감나게 했다. 그런데 30분 거리라고 알고 있었던 콩코드는 눈보라 속을 세 시간이나 달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눈길이라서 버스가 느리게 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상했다. 마침내 콩코드 표지판과 함께 버스는 종점에 서고, 차에서 내린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뿐이었다. 결국 터미널 사무실로 가서 월든 호수로 가는 길을 물었고,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 토론을 나눈 결과, 나는 보스턴에 인접한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로 가야 했는데 훨씬 멀리 떨어진 북쪽 뉴햄프셔주의 주도인 콩코드로 잘못 왔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마음씨 좋게도 차비를 받지 않고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나를 태워 주었다. 다시 세 시간 넘게 눈폭풍 속을 달려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조금씩 저물고 있었다. 월든 호숫가에서 마땅한 숙소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망설여졌지만, 다음날로 미루면 기회를 놓칠 것 같아서 서둘러 택시를 타고 호수로 향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30분도 안 걸려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나타난 호수는 상상했던 것보다 컸고, 옅은 저녁빛에 잠긴 얼어붙은 수면이 신비롭게 나를 맞이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소로우가 물질문명을 거부하고 순전히 자신의 노동에만 의지하면서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곳, 19세기의 경전이라 일컬어지는 <월든>을 집필한 곳에 마침내 서게 되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는 사이 택시는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호수를 한 바퀴 돌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겨울 저녁이라 인적이 끊겨 있었다. 그런데 산책로 중간쯤에서 나는 한 백인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소개하게 되었다. 그는 소로우의 책을 읽고 50년 전에 콩코드로 이사 와서 최소한의 물질에 의존하며 자연주의 사상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그렇게 호숫가에 서서 얘기를 주고받았고, 그날 밤 그의 집에서 단순한 채식 위주의 식사를 대접받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밤을 지새며 현대 문명과 소로우의 사상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 동안 그의 집에 머물며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월든 호수를 산책했으며,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다. 5년 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일 그날 내가 엉뚱한 콩코드로 가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곧바로 월든 호수로 갔다면,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늘 살아 있는 한 아름다운 영혼과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날 나는 먼 길을 빙 돌아서 그가 서 있는 월든 호수로 갔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그에게로 가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그 먼 길을 돌아 '곧바로' 그와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간 것이었다. 그것이 삶이라는 여행의 신비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말했다. "나는 많은 길을 돌아서 그대에게로 갔지만, 그것이 그대에게로 가는 직선 거리였다."


굳이 월든 호수에 가지 않고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만난 사람이 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소로우의 시민불복종 정신을 만나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다. 그는 비폭력 무저항 간디 정신 모태였다. 그뿐 아니다. 보스톤 대학에서 공부했던 마틴 루터 킹도 대표적인 그의 정신 계승자다. 케네디 대통령, 시인 에이츠…


호수 안쪽에 있는 그의 오두막 터를 둘러보지도 못했고, 류시화 시인처럼 평생의 정신적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헨리 소로우의 느낌 한 부분을 같이 공유하고 그의 철학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던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이 헨리 소로우에게로 가는 나름의 직선 거리였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호수 전경과 맑은 공기는 보너스였다.


한국의 가을은 순탄치 않다. 올초부터 불거진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이 점입가경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애쓰는 언론, 정계, 경찰, 국정원의 전방위적 발버둥이 안쓰럽다. 분명 바로 잡아야 할 것인데 숨기기에 급급하다. 때맞춰 진보란 허울을 쓰고 북한을 쫓는 이석기 의원 사건도 분노를 일으킨다. 세상을 변혁시켰던 가장 큰 힘은 폭력이 아니라 양심과 법치라는 것을 잊은 닮은 꼴들이다.


눈을 호수로 돌려 헨리 소로우를 만난 이후 한국 뉴스가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말 먼 길을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순탄치 않은 지금의 상황이 한국의 민주주의로 가는 직선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급증을 버리고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향한 목적지만 잃지 않으면 된다. 수세기전 월든 호수를 돌았던 헨리 소로우에게서 잠시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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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3]
 JamesLeeSG 2013.09.23, 22:05:35  
좋은글 감사합니다
IP : 66.xxx.33.168
 miro 2013.09.22, 01:10:18  
지난 여름 월든 호수에서 수영하며 보냈던 아름다운 날들을 추억했습니다. 이제는 현실로 돌아온 서울..그날들을 되새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IP : 211.xxx.139.124
 Inkyoung 2013.09.15, 06:57:16  
글을 읽어내려가며 아~참좋은 이계절에 사색하며 직선거리에대해 생각할수있는 좋은글로 맘이 따뜻했는데 호수의사진보는순간 환호가~~~역시 동부의 단풍!!!보고싶다!!!
IP : 122.xxx.10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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