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74회
보스톤코리아  2012-11-26, 16:38:24 
어려서 엄마가 매를 드시면 도망가지 않고 한 자리에 있어 매를 더 벌었던 아이였다. 언니는 엄마의 매만 보면 줄행랑을 쳐 매를 맞지 않고 엄마가 화가 수그러들 쯤에 집에 돌아와 조용히 그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한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어도 어찌 이리도 한 자매가 다른지 모를 일이다. 오래전 엄마는 가끔 이 얘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매를 들었던 그 시간보다 화로 인해 매를 쳤던 당신의 마음이 더욱 속이 상해서 하시는 말씀일 게다. 그때 얼른 도망가지 않고 왜 그렇게 앉아 있었느냐는 것이다. 엄마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고 계셨다.

매를 든 엄마를 보고 늦둥이 막내딸이 줄행랑을 쳤다면 그 뒤를 쫓아와 동네 한 바퀴 돌았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의 엄마로 내 가슴에 남았다. 아들을 낳고도 키우지 못했던 엄마는 어릴 적부터 딸에 대한 사랑보다는 과보호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게다. 나중에 엄마에게 직접 들려드린 얘기지만, 그건 자식을 향한 사랑과 정성보다는 엄마가 아들을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엄마도 그것이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대답을 해주셨다. 엄마의 그 강한 성격을 알기에 고집이 센 막내딸은 그 매를 보고 도망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밖에서 놀다 다른 집 사내 녀석에게 여자라고 해서 울음을 터뜨리고 집에 들어왔던 하루, 엄마는 이유를 끝까지 물으시고 이내 막내딸 손을 잡고 그 녀석의 집을 찾아갔던 일이 있었다. 그 어린 마음에 엄마 손에 이끌려 그 녀석 앞에 섰던 빨개진 얼굴의 창피함과 구겨진 자존심이란 크도록 내 가슴에 남은 상처였다. 나는 이다음에 저렇게 강한 엄마, 극성스런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엄마는 아니 계시지만, 언니들과 만나 엄마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잊지 않고 하는 얘기 중의 하나의 얘깃거리가 되었다.

이처럼 어릴 적 그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쉬이 가시질 않았다. 늦은 막내로 자라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무엇보다도 언니들은 아버지께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모두 내놓지 못했지만, 막내딸의 특권으로 하고 싶은 말과 의견을 다 내놓았던 기억이다. 그런 환경적인 요인이 삶에서 막내 기질도 있었겠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낯선 삶의 테두리 안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버거웠던 시간에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도망하지 않는 고집쟁이 아이로 있었다.

이렇듯 나와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어른이 되어서 그 어떤 이해관계의 여하에 따라 조화를 이뤄 살아가야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던 길에서 느닷없는 소낙비를 만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것처럼 그 만남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렇게 삶의 길목마다에서 만나고 경험했던 어려운 일들 속에서 하나 둘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 배움이 깨달음이 되고 그 깨달음이 인생에서 지혜가 되어 오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려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오늘의 감사를 배운다.

부모의 사랑 안에서 철없이 자라다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 그리고 인생에서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꾸려가는 새로운 삶의 터전은 내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맞서야만 했던 삶의 전쟁터였는지도 모른다. 서로 만나 부딪히며 맞춰나가던 그 시간은 그리 짧지 않은 2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속에서 만난 관계 중에는 내 부모 형제·자매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관계도 있었지만, 때로는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관계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어 부질없는 것에 집착했던 안타까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불혹(不惑)의 아홉수를 보내고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살아야 할 지천명(知天命)을 맞이하는 첫 길목에서 잠시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며 여러 생각들이 오버랩 되어 흐른다. 그 시간 속에 함께 했던 인연의 발자국들을 되돌아보면서 여러 색깔과 모양의 삶을 깊이 만나본다. 삶 속에서 욕심으로 인해 마음의 여유 없이 달려가고 쉼 없이 뛰어갔던 이들의 모습과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던 이들 그리고 그 속에 함께했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지난 삶을 반추해보면서 피할 수 없는 비라면 뛰어가도 맞을 바엔 천천히 걸어나 가지….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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