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께 <양심 냉장고> 놔 드려야겠어요.
보스톤코리아  2012-07-23, 15:16:32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횡단보도 빨간 불을 무시하고 차를 달리던 친구의 행위가 그것이다. 이래도 되느냐는 질문에 어이없는 눈길만 되돌아 왔다. ‘이건 뭐지’하는 이상한 놈 취급이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 보니 과거 한국에서 운전할 때 필자 또한 당연하게 그랬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당시의 당연함과 달리 지금은 왜 이리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고 불편할까.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한인 언론사 관계자들과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이를 화제에 올렸다. 새벽 3시 빨간 불 신호등에서 그냥 가야 하는지 파란불로 바뀐 다음에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압도적인 다수가 빨간 불일 때 사람이 없으면 가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오히려 파란 불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에 또 다시 이상한 놈 취급이었다. 교통신호는 어느 시간이 됐든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자 융통성 없다는 의견이었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 한인들은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새벽에도 신호등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을 찾아 냉장고를 선물하는 이 프로그램은 선풍적인 인기였다. 사소한 법부터 제대로 준수해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만큼 법을 지키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풍자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상당기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질서 위반의 아픔이나 반성이 아닌 코미디로만 이를 기억한다.

그래서인가 한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관 선출도 코미디다. 고영한, 김신, 김창석, 김병화 씨가 새 대법관 후보로 국회 청문회를 받았다. 대법관으로서 친 재벌, 특정 종교 편향 등의 판사적 자질 문제는 논란거리도 되지 못했다.김병화 후보자가 종합 비리 세트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태백시장 인사비리 수사 무마 청탁 의혹, 중학교 선배인 브로커를 통해 제일저축은행장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 등 검사장까지 지낸 그가 위장전입 2건, 다운계약서 작성 3건, 세금탈루 3건 등의 불법 의혹을 받고 있다. 우스운 것은 이 브로커 선배와 서초동의 같은 아파트 401호와 601호를 각각 샀는데, 아내가 자기 명의로 한 일이어서 몰랐다는 김 후보자의 해명이다.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임명된 10명의 대법관 중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해 양창수, 민일영, 이인복, 박병대 대법관 등 5명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범법자들이 어떻게 다른 범법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에도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이들의 임명이 현실화 됐다.

이들을 임명한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모든 일이 형이면 통한다는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의 구속 수감, 측근 중의 측근이라는 김희중 청와대 제 1부속실장의 수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 등 수많은 대통령 측근 그리고 가족이 불법으로 구속됐다. 내곡동 사저, 불법사찰, 방송장악 정권의 시작부터 BBK 비리의혹, 가짜 편지 조작사건 등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타락한 정권이다.

단 이명박 정권 뿐만 아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권위주의 시절의 불법은 차치하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모든 대통령이 불법과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설립 이래 거의 모든 정권이 불법과 탈법을 당연시 여겼다는 사실이다.

홍콩 소재 기업컨설팅 연구기관 PERC(Political & Economic Risk Consultancy,)가 발표한 2012 부패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9점을 획득, 아시아 16개 국가 중 11위를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하여 점수는 1점, 순위는 2계단 하락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좀체 개선될 줄 모르고 뒷걸음질 치기에 바쁘다.

왜 그럴까. 근본적인 문제는 사소한 불법을 당연시 하는 한국의 문화다. 바쁠 때는 또는 사람이 없을 때는 신호등 하나 정도는 가볍게 위반할 줄 알아야 한다는 합리화다. 불법을 저지르고 그 결과가 좋으면 사건을 미화하기에 바쁘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5.16은 구국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은 그 합리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성공을 위해서는 불법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화를 지금 차단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암담하다.

미국사회에서 살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미국사회의 준법 문화는 오랜 교육과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 또한 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책임지는 구조다. 분식회계로 유명한 엔론의 제프리 스킬링 전 사장(57세)은 5년간 조사 끝에 2006년 부정행위에 대해 24년 형을 선고 받고 콜로라도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쉬운 예로 교통신호 위반의 경우 첫 번째 위반은 교육적으로 선처한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는 벌칙금은 물론 보험의 벌점으로 남아 향후 6년간 벌점만큼 높은 보험금을 부담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지게 하는데 버틸 장사는 없다.

신호등처럼 작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불편하고, 입안에 가시가 돋아야 한다. 그 때야 비로소 법 판결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 후보가 범법자인데도 용인하는 순간이 다지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는 12월에 이 같은 일의 초석을 다지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대법관에, 아니 대한민국에 <양심 냉장고> 놓는 일이 될 것이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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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Inkyoung
2012.07.24, 12:23:24
7월말인데도 후보들의 혼탁함이 그득한데 과연 12월에 양심냉장고가???그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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