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24. 야사카(八板) 신사와 기온(祇園)마쓰리
보스톤코리아  2012-01-18, 16:13:10 
교토는 3천여 개의 절과 신사가 골목마다 널려 있고 그 중에 16개의 세계 문화 유산이 있는 곳이다. 교토의 인구가 150만 명인데 일년에 교토를 찾는 관광객은 6500만 명이나 된다. 어느 한곳도 예사로 지나 칠 수 없을 만큼 문화재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도시다. 교토 자체를 문화재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교토를 관광할 때에는 땅 밑에서 빨리 달리는 전철 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면 도시 구석 구석에 널려 있는 문화재를 느긋하게 관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교토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교토역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교토 천도 1200주 년을 기념하여 1997년에 완공한 지극히 웅장하고 현대적인 기차역 건물은 고도(古都) 교토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맨 아래층에서 11층까지 직선으로 뻗쳐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는 세계 어느 건물에서도 볼 수 없는 현대 건축의 백미를 보여 주고 있다. 이 건물 안에 교토 여행자가 꼭 들려야 할 곳이 하나 있다. 교토역 2층에 있는 교토 information center 에 들려 영어나 한국어로 되어 있는 교토시 버스 지도를 꼭 챙겨야 한다.

교토의 관광지는 대부분 버스로 갈 수 있어 500엔 짜리 1일 버스 티켓 한 장이면 하루종일 교통편을 해결할 수 있다. 교토역 앞에는 다양한 노선의 버스 정류소가 모여 있어서 교토의 어느 곳이나 갈 수가 있는데, 정류소 앞에 있는 교토 버스 안내 센터에 문의하면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버스는 중간문으로 승차해서 내릴 때는 운전기사가 있는 앞문을 이용하면 된다. 교토 기온(祈園)에 있는 야사카 신사는 일본 개국신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남동생 스사노오 노미코토를 제신으로 모신 신사다.
예전에는 기온사(祈園社)라고 절과 신사가 함께 공존하였었는데 명치유신 때 신도 황국 사상을 내세우기 위하여 신도와 사찰이 함께 존재하였던 종래의 관행을 깨고 불교를 배제하고 신(神)만을 모시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기온사의 명칭도 야사카 신사로 바꿔 버린 것이다.

기온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온통 주황색으로 치장한 건물이 눈에 띠면 그 건물이 바로 야사카 신사다.
기온은 교토의 번화가 이자 환락가로 큰 길에는 오래된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고 큰길 뒤쪽으로는 찻집과 요리집에 요정들이 있는 곳이다. 1700년 초기에 개업한 이치리키라는 요정은 1863년 명치유신의 주역들이 모여 도쿠가와 막부를 토벌하는 모의를 하던 곳이다. 바로 이곳 기온이 요정과 함께 일본기생, 게이샤가 시작된 곳이다. 교토의 상인과 요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고 야사카 신사를 찾기로 한다.

교토의 야사카 신사는 전국 방방 곡곡에 8만 5천 687개의 지역 신사를 거느린 일본 최대의 신사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느 신사와는 규모가 다르게 웅장한 기운을 뽐내고 있다. 일본 서기에 적혀 있기로는 서기 656년, 사이메이(齊明)천황 2년에 고구려 보장왕이 대사 달사(達沙)와 부사 이리지(伊利之)등 81명의 사신들을 보내 왔다.

부사 이리지는 신라의 우두산(牛頭山, 소시모리)에 계신 스사노오 노미고토 신을 야마시로국(교토의 옛이름)의 야사카 향으로 모시고 와서 제사를 드렸고 스사노오 신을 위한 사당을 세운 것이 바로 기온사(祈園社)라고 한다. 스사노오 노미고토 신은 일본 개국신(天照大神)의 남동생으로 일본에서는 악신(惡神)으로 부르는데 그 이유는 스사노오가 하늘에서 내려 올 때 일본으로 내려오지 않고 신라의 우두산으로 내려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이메이 왕은 이리지 에게 야사카 노미 야스코 (八坂造)라는 성을 하사했다. 기온사는 이리지의 장남 마테(眞手)가 궁사가 된 이래로 지금까지 1350년을 이리지의 자손들이 궁사(宮司)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궁사는 다카라 요시타다(高良美忠) 씨다.
서기 869년, 청화왕(淸和王) 때에 교토를 비롯한 주위에 역병이 창궐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자 일왕이 대신들과 점장이를 불러 대책을 협의한 결과는 스사노오 신이 화가 나서 역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스사노오 신을 달래는 제사를 제안하였다. 그래서 일본 제일의 기온 마쓰리가 시작 된 것이다.

도코의 간다 마쓰리(神田祭), 오오사카의 텐진 마쓰리(天神祭)와 함께 일본 3대 마쓰리가 된다. 마쓰리는 축제라는 뜻인데 “신을 맞으리”라는 우리말 “맞으리”가 “마쓰리”로 자음 유전 된 것이다. 축제 때 외치는 “왓쇼이” 라는 구호는 우리말” 신이 오셨다.” 라는 뜻이다.
마쓰리는 매년 7월 1일부터 7월 31일 까지 일개월간 열리는데 교토의 야사카신사(기온사)에서 스사노오 신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에 교토의 각 지역에서 만든 32대의 수레를 몰고 교토 시내를 달려 각자 자신의 지역까지 가는 축제다.

가마는 야마(山)라는 이름을 가진 1/2- 1톤 규모의 수레가 23기이고 7-12톤의 무게를 가지고 지붕에다 창을 꽂은 호코라는 수레가 9기인데 이 야마와 호코에 신라의 우두산 에서 모셔온 우두 천황의 신령을 모시고”왓쇼이” 를 계속 외치면서 교토 시내를 달리는 것이 축제의 절정이 되는 것이다. 스사노오 신이 있었던 우두산(牛頭山)의 위치는 강원도 춘천, 또는 경상도에 있다는 설이 있으나 명치 유신 때 저명한 역사 학자인 동경 대학 구메구니다케 교수는 강원도 춘천을 지목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 10대 나해(奈解) 왕 27년에 춘천 지방을 우두주(牛頭州)로 언급한 기록이 있다.

구메 구니다케 교수는 “일본 천황이 천조 대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은 고구려의 동맹(東盟) 신, 부여의 영고(迎鼓) 신, 예의 무천(舞天) 신을 제사 지내는 천신 숭배 사상을 받아들인 것으로, 신도는 하늘을 모시는 한반도의 오랜 풍속” 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동경 대학 교수직에서 파면을 당했다. 죄목은 황실에 대한 불경, 국체 훼손, 안녕 질서를 문란시켰다는 것이었다. 명치유신 때 천황제의 확립을 위해 신도를 체재의 근간으로 삼으려 했는데 갑자기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이 신도의 근간이라고 하니 용납이 안된 것이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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