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와 백만장자 비서
보스톤코리아  2011-09-26, 16: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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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룰(Buffett rule)’. 이 미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9일 3조에 달하는 재정감축 및 일자리 창출 재원 마련 연설에서 언급함으로써 달아 오른 화두다.

1백만 달러 이상 부자들의 세금비율이 중산층 가정보다 낮지 않도록 세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버핏 룰의 핵심. 세금에 관련된 문제라 한국에서는 ‘버핏세’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버크셔 헤더웨이 워렌 버핏 회장의 이름을 딴 ‘버핏 룰’은 지난 8월 14일 버핏 회장이 뉴욕 타임즈 오피니언 난에 “슈퍼부자 감싸주기 그만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던 게 계기가 됐다. 이 글에서 버핏은 억만장자인 자신이 백만장자인 자신의 비서보다 낮은 세금율을 적용받고 있다며 부자 감싸주기를 그만해도 된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세와 소득세를 합쳐 내가 모두 부담하는 세금은 17.7%였다. 하지만 내 사무실 직원의 평균 세율은 32.9였다. 내 사무실 비서를 포함 누구도 나처럼 적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나는 따로 절세 계획을 하지 않고, 회계사도 쓰지 않는다. 나는 미 의회가 하라는 대로 따라서 보고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버핏 룰’이 다른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민주와 공화당의 시각 차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증세라면 무덤에서라도 안 된다는 공화당의 극한 밀어붙이기에 번번히 뜻을 접었던 오바마가 다시 부자 증세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지난 부채한도 증액 협상 등 공화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양보하고도 결국 공화당의 협력을 받지 못한 오바마의 분노가 이번 발표에 녹아 있다.

공화당은 이에 즉각 반발, 부자들에 대한 계급투쟁(class warfare)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또한 국민을 의식, 오바마 감축안이 중산층과 미 경제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을 몰아간다.

공화당 대선 후보 릭 페리는 “가장 필요한 시기에 투자를 저해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고, 미트 롬니는 “경제성장에 나쁜 충격”이라고 말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스몰 비지니스 세금 인상”이라고 몰아갔다. 보수언론도 뒤질세라 숫자 놀음에 들어갔다.

USA투데이와 팍스뉴스는 20일 국세청(IRS)과 세금정책센터(TPC) 등을 인용, "이미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TPC에 따르면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고소득 가정이 낸 소득세 비율은 전체 소득의 평균 29.1%에 달한다. 이는 중산층에 해당하는 5만~7만5천 달러 소득 가정의 평균 15%의 약 2배 수준이다.

IRS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소득 100만 달러 이상 가정의 연방 소득세 비율은 24.4%, 5만~6만 달러 소득 가정(6.3%)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

보수층뿐만 아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은 절반의 진실인 케케묵은 버핏 룰을 다시 꺼내 들었을 뿐이라며 오바마를 믿은 자신이 ‘얼간이’였다고 털어놨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오바마의 재정감축안에서 메디케어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감축이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 공화 양당이 또 다시 ‘대 타협(Grand Bargain)’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미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오바마와 버핏 회장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며 증거를 제시했다. 문제는 백만 달러 소득자의 전체를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일부가 그렇다는 것.

크루그먼 박사는IRS의 자료를 근거로 미국내 400대 부자들의 30-40%는 평균 소득 세금율이 15%이하이며 대부분은 20% 이하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중산층의 소득은 대부분의 소득이 근로소득이지만 부유층들의 소득은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부분이 3분의 1에 불과하며 대부분 배당금, 투자수익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도 힘들다. 현재 배당금, 투자 수익의 경우 15%의 세율만 일괄적으로 적용 받는다.

연방 재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3만8천명이 최소한 1백만 불 이상 소득을 올리며 이중 25%의 소득세율은 15%이하에 불과하다. 더구나 1천4백70명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조세체계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를 증명한다.

미 국민들은 일단 버핏 룰에 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상황. 많은 국민들이 오바마에게는 애증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서도 점차 부자 증세에 동의하고 있다는 게 AP와 CNBC의 여론조사 결과다. 경제학자들도 현재의 미국 조세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박사도 미국인들에게 공정한 몫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계급투쟁이 아니다. 허술한 세금 시스템은 부자들의 로비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만장자들이 0.5%만 세금을 더 내면 국내총생산이 1.5%나 증가한다고 밝혔다.

억만장자와 그 비서의 세금율이 바뀌어 있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뉴욕 타임스는 21일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부자 증세를 실시했고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자 증세를 도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버핏 룰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미국이 답답할 뿐이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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