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아버지 김 프란치스코 신부와의 인터뷰>
보스톤코리아  2009-06-02, 13:31:02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어디에 있는가?

1995년 맨하튼의 31번가 성당에서 아침마다 홈리스들에게 빵을 나눠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인해 죽어가던 당시 상황이 마음 아파 신부님에게 “미국홈리스는 행복하다.”고 했더니 신부님이 “가서 도와라. 너희 동포들인데 왜 돕지 않느냐.”고 하며 밀가루와 옷 등을 지원해 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고 돕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차마 그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소개하는 자료들은 그 이후에 찍은 것들이다.

★이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북한에 가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얘기를 해달라.

우리가 북한에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가서 농업 기술이나 공업 기술 등을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자업,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싶다. 2년 전에 베드로라는 자원봉사자 부부가 북한에 가서 된장 공장과 빵 공장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남편 분이 간에 병이 생겨 돌아가시게 됐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방치된 상태이다. 북한 측에서 땅도 주고 다 얘기가 되었던 것인데 정부가 바뀌고 하는 바람에 지금은 잘 안되고 있다.

★ 탈북자들의 삶을 소개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들 놀라신다. 우리나라의 반쪽이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막연하게 알기만 할 뿐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더라. 영상 자료를 통해 그런 것을 알게 되면 다 충격을 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나라, 내 땅, 내 민족의 개념이 절실하지 않다. 이스라엘 민족과 비교해 보면 너무 차이 난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라면 무조건 돕고 같이 살려고 한다.


★탈북자들을 도우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는 일은 공안을 피해 숨어서 몰래 하는 일이다. 어떤 때는 밤에 온다는 정보를 받고 산에 가서 기다리다 오지 못하는 그들을 새벽까지 기다리며 산을 두세 바퀴 돈 적도 있다. 오지 못하는구나 싶으면서도 혹시 나를 찾지 못하고 숨어 있을까 봐 찾으러 다닌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탈북자들을 몰래 만나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허비 되는 경우들이 많다.


★농장의 규모가 많이 커진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런 생각이 드는 지, 또 농장 경영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하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농장 규모를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후원을 덜 받고자 하는 취지인 데다 1개월밖에 체류할 수 없는 중국에 농축산물 사업자로 장기 체류하기 위한  데도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장 규모가 커진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흥이 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를 대신해 관리해 줄 사람이 없는 게 제일 힘들다. 내가 떠나 있어도 나를 대신해 농사도, 기계도 다 맡아서 관리해 줄 자원 봉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신부님처럼 직접 현장에서 도울 수 없는 우리들이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게 첫번째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벤츠 같은 고급 외제차를 타지 않는다. 그들처럼 한민족이라는 의식 하에 단결하여 힘을 길러야 한다. 남한이 힘이 강해지면 통일도 되고 다 해결 되리라 본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도 우리나라를 얕보기 때문이다. 꼭 그 곳에 가서 돕는 게 능사는 아니다.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북한 사정이 좋아지면 그만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너무 깊이 관여하다 보니 그만 둘 수가 없는 지경이다. 이제는 그곳에 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어 안 갈 수가 없다.


김현천 hckim@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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