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1세 풍월주風月主 선품공善品公(4)
보스톤코리아  2021-08-02, 10:28:28 
681년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흠돌의 난’을 진압한 신문왕은 정권장악에 걸림돌이 되는 무관 진골세력을 많이 숙청하였다. 반란진압에 크게 조력한 왕의 어머니 자의태후도 그간 쌓여온 화랑도의 어지러운 낭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김염장이 풍월주로 재임(621 ~ 626년)할 당시부터 염장에게 첩을 제공하면서 득세하기 시작한 찰씨察氏 가문은 그 후로도 풍월주를 비롯한 진골세력(진골정통 및 대원신통) 들에게 첩을 제공하면서 낭두의 직위를 독식하게 되었고 아울러 그들은 풍월주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치면서 낭정의 폐단을 초래하고 있었다. 일례로 24세 천광공이 풍월주로 있을 때(643 ~ 647년)는 딸을 염장공에게 첩으로 준 가야낭두의 우두머리 찰인察忍은 이미 나이가 60세가 넘었는데도 대노두大老頭 로 있으면서 처첩과 자녀가 백명이나 되었고 출타시 행차는 완전히 상선(전임 풍월주)과 같았다. 대노두, 대도두大都頭 등 낭두의 우두머리들이 누리는 이와 같은 향락과 위세가 681년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니 화랑도의 낭정은 가히 어리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정계에는 23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군관이 상대등의 위位에 있었고(신문왕은 즉위와 동시에 그를 병부령으로 강등시켰다), 문명왕후의 조카이자 27세 풍월주를 지낸 김흠돌은 외척의 세력을 과시하며 이미 딸을 태자빈으로 출가 시키고 있었다. 즉 정명태자는 김흠돌의 딸을 빈으로 맞았으며, 681년 신문왕으로 즉위하면서 그녀는 왕후가 되었다. 가야파 찰인을 비롯한 그들의 아들과 족척들은 화랑도의 낭두직을 독식하며 떨친 위세는 목불인견이었고, 또한 일부 풍월주를 지낸 진골무관들은 정계와 외척으로 득세하고 있었으니 화랑도의 낭정은 어지러워지고 왕권은 위축되고 있었다. 이에 위협을 느끼며 정세를 파악한 자의왕후는 남편 문무왕의 병세가 악화되자 북원경(현 원주)을 지키고 있던 김오기를 왕성으로 불러들여 호성장군에 임명하였다. 문무왕은 681년7월1일에 사망하였고, 곧이어 문명태후(무열왕 김춘추의 왕후)도 세상을 떴다(고 사료된다. 그녀는 681년 사망했는데 정확한 날짜의 기록은 없다). 그리고 동년7월에 즉위한 신문왕은 상대등 김군관을 병부령으로 강등시켰다. 그리고 동년 8월8일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김흥원, 진공 등과 도모한 역모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후견인이자 이모인 문명태후가 죽고 또한 김군관의 강등을 보면서, 왕의 장인이긴 하지만 자신의 목도 서서히 조여옴을 느끼고 반란을 꾀했다고 보여진다. 자의태후의 명으로 왕성에 와있던 호성장군 김오기를 비롯한 순지, 개원, 당원, 원수, 용원공 등이 반란군을 1주일 만에 진압하였다. 김흠돌을 비롯한 반란의 수괴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병부령으로 강등된 김군관도 며칠 후 장남과 함께 참수되었다(사약을 받았다). 동시에 왕후로 있던 김흠돌의 딸 김씨도 폐비되었다. 진압군에는 수 많은 화랑도들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자의태후는 화랑도를 폐지하기로 결심하였다. ‘김흠돌의 난’ 주동자들이 풍월주 출신인데다가 동원된 반란군 중에 무수한 화랑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낭도의 수도 문제이지만 역모가 낭정에서 나왔기에 화랑도의 존재가 왕권에 위협이라고 보았다. 특히 상선(전임 풍월주) 들은 무사에 능한 낭도들을 사병私兵으로 데리고 있었기에 언제 또 역모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도 보여 진다. 그래서 김오기로 하여금 낭도郎徒들의 명단을 작성하게 하여 모두 병부兵部에 속하게 하고 각자 그에 맞는 직職을 주었다. 이렇게 왕경의 화랑도는 폐지되고 낭도들에게는 병부의 직이 주어졌지만 지방의 낭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 제도와 풍속은 다시 왕경으로 들어왔다. 자의태후는 중신들에게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중신들은 비록 화랑도는 폐지 되었으나 화랑도의 좋은 풍속들, 즉 풍류를 즐기고 무예를 연마하며 인격을 도야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니 오래된 풍속을 갑자기 폐지하는건 좋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자의태후는 득도하여 국선國仙이 되는 것은 허락하였다. 결국 화랑도는 국선의 이름으로 계속 이어졌고 풍월주의 제도는 폐지되었다. 풍월주의 폐지와 함께 자의태후도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한편 ‘흠돌의 난’ 을 일으킨 김흠돌은 부모가 김달복과 김정희이다. 달복의 선대 가계는 전하지 않는데 정희는 김유신의 누이이다. 흠돌은 진광을 아내로 맞았는데 진광의 부모는 김유신과 영모이다. 영모는 김유신의 첫 부인으로 딸 진광, 신광, 작광, 영광, 그리고 아들 삼광을 낳았다. 그리고 김유신은 환갑년에 지소(부모는 김춘추와 문희이다)를 부인으로 맞아 원술, 원정, 장이, 원망을 두었다. 또한 흠돌의 처형處刑과 함께 흠돌의 딸인 신문왕의 왕후도 폐비가 되었고, 다시 맞은 신목왕후는 김흠운의 딸이다. 김흠운은 흠돌과 형제인데 누가 형인지의 기록은 없다. 신목왕후의 어머니는 요석공주이다(요석공주의 부모는 김춘추와 보희이다). 요석공주는 처음에 김흠운과 결혼했었는데 김흠운이 655년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했기에 과부로 살다가 원효대사의 청혼을 받아 설총을 낳았다. 원효는 7세 풍월주를 역임한 설화랑의 증손자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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