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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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21-01-21, 16:42:28 
왕오천축국전 절략본, 6,379 글자
왕오천축국전 절략본, 6,379 글자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2)가 감숙성 돈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온록에게서 7,000여점의 유물을 구매하였는데 책이름도, 저자명도 떨어져 나가 있는 두루마리였다. 그러나 여러 불교 서적에 주석을 단 "일체경음"에 "해초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어휘가 있어 이 책의 이름이 "왕오천축국전"임을 알 수 있었다.

본문에는 開元十五年十一月上旬至安西 즉, "개원 15년 음력 11월 상순에 안서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개원 15년은 곧 당나라 현종 727년이다. 돈황의 학자들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책의 이름은 알아 냈지만 저자가 누구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7년동안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저자 혜초의 국적은 그의 여행기가 발견된지 7년후인 1915년에 처음으로 일본의 종교학자인 다카쿠스 준지로와 일본의 승려이자 니시 혼간지(서본원사)의 세습 주지인 오타니 고즈이에 의해 밝혀졌다.
그전에는 혜초가 밀교승 금강지(671-741) 삼장과 불공(不空) 삼장의 제자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의 국적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다카스키 준지로는 당나라 때의 밀교가 최전성 시기 문헌인 "원조"의 사료를 인용하여 혜초는 신라사람으로 16살때 당나라에 들어가 중국 밀종의 시조 금강지 삼장과 불공삼장에게 사사하고 불경의 한역에 혜초가 공헌하였다고 고증하였다. 이로써 혜초가 신라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왕오천축국전"에는 혜초 본인의 오언시(五言詩)가 실려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혜초 본인의 신원을 알아내려고 7년의 긴 세월을 헤매었다. 혜초가 쓴 오언시를 주의 깊게 읽으면 금방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일남(日南)은 옛날의 베트남을 말한다.

<남 천축국 길에서>
달밤에 고향 가는 길 바라보니
뜬 구름 휘휘 돌아 나가네
그편으로 서신 붙이고자 하니
급한 바람은 듣지 않고 돌아가 버리누나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의 구석 서쪽에 있는데
일남(日南)에는 기러기가 있지 않으니
누가 계림을 향하여 날개짓을 하오리
(계림은 신라의 도읍지이니, 혜초는 분명히 신라사람이다.)

"왕오천축국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기이다. 13세기 마르코 폴로 여행기, 14세기의 동유기, 그리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에 포함되어 있다. 동양에서는 천축국에 구법 여행을 한 네명 승려의 여행기가 있다. 혜초, 법현, 현장, 의정의 여행기가 있는데 혜초의 여행기는 법현과 현장의 여행기에 비해 너무 간략하게 되어 있다는 비난도 있지만 천축뿐만 아니라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를 망라한 다양한 국가들의 풍습, 음식, 관습, 의복 등을 서술했다는 것을 감안 한다면 대단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8세기경에 왕오천축국전은 인도 유일의 역사서였다.

당시 중국에 유학했던 신라 승려는 무려 180여명에 이르렀는데, 이중에 인도를 다녀온 승려가 15명이었고 이들 중 10명은 여행길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에 신라로 돌아온 사람은 오직 5명뿐이었다.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 2명 있었다. 한사람은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고, 또 한사람은 신라 밀교승 혜초 대사였다. 혜초는 4년에 걸쳐 천축국과 중앙 아시아, 페르시아, 아프카니스탄에 이르는 긴 여행을 마치고 AD 727년에 안서도호부가 있는 쿠차를 통해 들어왔다. 왕오천축국전에서 유일하게 행적의 시간을 밝힌 곳은 이곳뿐이었다.

고선지는 안서도호부 우진전에서 AD 740년부터 진수사로 일했으니 두사람 사이에는 13년의 시간차가 있었다. 두사람이 인연이 있었다면 안서도호부를 매개체로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혜초의 일생은 금강지 삼장과 불공 삼장과 함께 경전을 번역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혜초는 금강지 삼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723년에 스승이 건너온 바닷길을 거꾸로 잡아 천축국을 다녀오게 되었다. 혜초가 천축국을 순유하고 돌아왔을 때 남천축국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금강지 스승은 결국 입적하였다. 그는 중국 밀교를 처음 시작한 종조(宗祖)로 추앙받는다. 그의 제자는 불공(不空) 삼장이었다.

금강지 삼장
혜초는 16세가 되는 신라 33대 성덕왕 18년(719)에 당나라 광주에서 남천축국 밀교승 금강지(669-741)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지는 남천축국 승려로 10세때 출가하여 20세때 구족계를 받았다. 대승과 소승 경전을 두루 공부하고 통달하였다. 남천축 용지 보살로부터 밀교를 배우고 관정까지 받아 밀교의 정식 상승자가 되었다. 관정은 수도자의 정수리에 향수, 물을 뿌리는 의식인데 악업이 소멸되고 내생에는 복덕을 갖춘 중생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금강지는 천축국왕에게 밀교를 중국에서 개교할 것을 승락받고 중국을 향해 떠났는데 남지나에서 뜻밖의 폭풍우를 만나 고생끝에 3년만에 중국 광주에 도착하였다. 그때 광주에 있었던 혜초가 금강지를 스승으로 받들게 되었다.
금강지는 장안 천복사에 도장을 세우고 밀교를 포교하고 경전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의 수제자 불공(不空) 삼장과 혜초가 도왔다고 한다. 혜초는 불공 스님을 도와 필사를 했는데 밀교 경전인 대승대교왕경에서 혜초의 이름을 찾을 수 있고 왕경의 서문은 혜초가 썼다고 한다.

불공 삼장
불공 삼장(704-774)은 사자국(스리랑카) 출신의 승려로 이름은 중국식으로 불공(不空)으로 부르지만 원래는 서역사람이었다. 14살때 금강지를 따라 냑양에 들어와 불경번역에 몰두하였다. 그는 인도어, 스리랑카어, 자바어, 중국어 구사에 능해 남들이 12년 걸리는 번역을 반년에 해내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두번이나 경전 번역을 위해 천축을 다녀왔는데 한번은 당현종의 부탁을 받아 다녀왔다고 한다.

불공은 774년에 입적하였는데 죽기 전에 제자들의 순위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순서는 금각사의 함광, 신라의 혜초, 청룡사의 혜과, 숭복사의 혜랑, 보수사의 원교, 각초 등 6명의 제자들이었다. 당나라 대종황제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대변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혜초는 금강지 삼장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동문이었던 불공 삼장의 제자로도 기록됐으며 그 자세한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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