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 (1)
보스톤코리아  2020-11-30, 14:40:23 
연운보 고지
연운보 고지
 

고선지 장군
서기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 당했다. 구당서 기록에 의하면 당나라는 20만명 이상의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여러 곳으로 많이 보내 버렸다고 한다.

산동성, 저장성, 영주(지금의 북경) 지방에는 농민들을 많이 보냈고, 황하 상류 하서(河西) 지방, 오르도스(하남), 감숙성, 무위 지역과 안서도호부의 쿠차 지역에는 군인들을 많이 보냈다. 당시 토번이나 돌궐족들이 많이 살았던 이 지역에서는 고구려 유민들에 대한 수요가 아주 높았다.

당시 당나라 정부에서는 외국인들을 군인으로 양성하는 번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高斯界)도 무위 지역의 번장이었다. 당나라에서는 무예가 출중한 고구려 유민들을 번장으로 많이 기용했는데 이정기, 왕사례, 왕모중 등이 이름이 많이 알려진 고구려계 번장들이었다.

이정기 장군은 산동성과 영주지역에서 9곳의 절도사를 겸직하고 있었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거느리고 있었던 병사의 30%가 고구려 유민들이었다고 한다. 백제 유민이었던 흑치상지와 신라의 장보고 역시 번장 출신이었다.

고선지는 어린시절을 무위에서 보냈다. 무위는 김씨의 시조 김일제의 고향이다. 흉노의 우현왕이었던 김일제의 아버지가 한무제에게 죽임을 당한 곳이다. 그래서 무위시 광장에는 투후 김일제의 동상과 마답비연의 마상이 서 있는데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김씨 성을 가지고 있다.

당나라 신당서 기록에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으로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으며 리더쉽이 출중했는데 고선지의 성장에는 그의 아버지의 음덕이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고선지는 안서 도호부 서남쪽에 있는 우진전의 진수사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당나라와 토번은 실크로드에 관한 헤게모니를 차지 하려고 다투는 와중에 토번과 제일 가까운 우진전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서 도호부는 10여개의 당나라 도호부중 병력이 2만 5천명이 되는 당나라에서 제일 큰 도호부였는데 쿠차에 본부가 있었다.

탈해부 원정. AD 741년
탈해부는 지금의 아프카니스탄 지역으로 AD 653년에 당나라에게 망한 서돌궐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 전쟁에서 고선지는 보병없이 기병만을 사용했고, 모든 병사들은 말을 2필 이상 준비시켰다고 한다. 말이 지쳐서 피곤해 지면 즉시 말을 바꿔 타서 적의 군사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동력을 앞세워서 승리한 것이다. 고선지는 승전하여 안서도호부의 제2인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당현종은 고선지에게 소발류와 토번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 토번에 시집가다
당태종의 딸 문성공주 토번에 시집가다
 
소발류는 지금의 파키스탄에 있었던 나라였는데 토번이 자신의 공주를 소발류의 왕비로 삼아 결혼 동맹을 맺어 버렸다. 원래 소발률는 당나라의 속국이었지만 이제는 토번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일찌기 당현종은 소발률에 군대를 보내 세번에 걸쳐 이들 두나라와 관계를 끊으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선지를 내세워 1만명의 군사로 정세를 만회하려는 것이다.

당나라와 토번은 지난 100여년 동안에 10여번의 대형전쟁을 치른 불행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당태종 때부터 시작해서 당고종, 측천무후, 당현종에 이르기까지 당나라가 딱 한번 승리했고 나머지는 모두 토번이 압승을 거두고 있었다.

측천무후와의 마지막 전쟁에서는 40만명의 당나라군이 3만명의 토번군에게 전멸을 당한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은 당태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AD 641년에 토번의 송첸캄포 왕은 당나라의 당태종을 공격해 수도 장안성이 함락될 위기에 빠졌다. 궁지에 처한 당태종은 자기 딸 문성공주를 토번에게 시집보내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때 세워진 토번의 포탈라 궁은 문성공주의 지참금 명목으로 세워진 당태종의 결혼 선물이었다.

이제 우리는 당태종으로부터 시작해서 당현종으로 이어지는 연패의 고리를 고선지가 풀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려고 한다.

연운보(連雲堡) 전투 (AD 747)
사람들은 파미르 고원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달나라에 가는 것보다 파미르에 가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 대부분이다. 저절로 코피가 나고 고산병 증상이 있는 곳이 이곳이다. 

고선지 군은 파미르에 오른지 75일에 오식닉 국에 도착하여 복병이 없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틀 뒤에는 공격 목표로 정한 연운보를 향해 새벽 네시에 적불당로, 북곡로, 호밀국도 등 세길로 길을 나누어 출발하였다.

연운보는 소발류 국이 가지고 있는 600m 높이의 전략적 고지인데, 산 바로 앞에 급류가 흐르고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웠고 역전의 토번군 만명이 이를 지키고 있어 고전이 예상되었다.

고선지 장군의 2차 정벌 (747년)
고선지 장군의 2차 정벌 (747년)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새벽 4시에 도강을 시작했는데 토번군들이 모두 잠들어 있어서 고선지군 만명도 모두 무사하게 도강을 완료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연운보는 그대로 깍아지른 절벽인 것은 물론이고 전투가 시작되자 시석이 빗발치는 중에 절벽을 기어오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낭장 고릉과 맥도장 이사업이 분전하여 4시간만에 연운보를 점령하였다.

남장 고릉은 그 이름이 고구려 장군으로 추측되는데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맥도장 이사업은 말 그대로 돌격대장인데 고선지 전에는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용감한 장군이다.
이날 고선지 군이 세운 전과는 토번군 5천명을 사살했고 천명을 포로로 잡았다. 고선지 군의 피해는 기록이 없었다. 그런데 고선지 군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전투에서 여전히 만명의 군사가 출정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고선지 군은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연운보는 사진에 보이는대로 연운보 절벽은 스파이더맨이나 올라갈 수 있는 절벽이었다. 그 절벽을 기어올라가 토번군을 거의 전멸시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고선지의 두번째 탄구령 싸움에서 고선지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 글의 편집에 많은 도움을 주신 김병국 교수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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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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