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숲에서 이는 바람처럼...
신영의 세상 스케치 744회
보스톤코리아  2020-05-25, 11:29:26 
화려한 빛깔의 정리된 꽃보다는 흐드러지게 핀 들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여전히 시골아이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라며 누렸던 바람의 그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것은 이렇게 너른 미국 땅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四季)를 만나고 누릴 수 있는 미 동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 사계절을 맞고 보내며 계절과 계절의 샛길에서 만나는 바람은 내게 꿈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졸여오는 설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깊고 깊은 바람의 속을 만날 때마다 잠자던 감성이 일어나 나는 한참을 그리움에 울먹이기도 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네 삶에도 봄을 지나온 그리고 아직 오직 않은 여름의 솔솔한 바람이 오가는 유월의 숲처럼 그렇게 평안한 유월의 바람이 불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을 만큼의 유월의 숲에서 이는 유월의 바람이 공간과 공간을 오가고 아우르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우리네 삶 속에서 서로 마주하며 사랑하고 때로는 부딪치며 미워도 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 소통하고 얹히지 않을 만큼에서 소화할 수 있는 통풍이 불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런.

우리는 가끔 착각하며 산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는 생각은 참으로 무지에서 온 결과다. 그저 다른 것뿐인데 생각은 그렇게 한다 하면서도 막상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차분한 이성은 온데간데없고 울컥 감성이 튀어 올라 감정을 앞세우기 쉬운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이 아닌가. 쉬이 툭 던진 말을 뒤로 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상대방에게 사과한들 어찌 그 어리석음이 씻기고 닦일까 말이다. 물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상대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부부간에도 그렇지 않던가. 사오십 년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의지를 세워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자기 생각대로 바꾸려 한다면 어찌 그것이 쉬이 바뀔 일이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상대를 바꿔보려고 아니 고쳐보려고 애를 쓰다가 울컥울컥 화도 오르고 때로는 그 화를 다스리지 못해 벌컥벌컥 화를 올리다 보면 집 안에 큰소리가 가라앉을 날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현명한 사람은 내 생각 중심 안에서 밀어내지 않고 일단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가정은 평화와 평안의 길 진입로에 도착한 것이다.

이처럼 그 관계가 부부나 부모 형제가 되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욱이 남남 관계에서는 서로 예의를 지킬 수 있어야 그 관계가 오래간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 너무 편안하게 대한다면 나중에는 탈이 나는 법이다. 특별히 기분 좋은 말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한다거나 조언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그 밑바탕에 진정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섣부른 조언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길 뿐이다. 서로의 체면을 생각하며 얼굴 붉히기 싫어 서로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하더라도 앙금은 남는 법이다.

그 어떤 곳이나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 모인 곳이라면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그 어떤 곳이라 할지라도 밀착되었거나 밀폐된 공간은 공기가 없어 숨이 막히고 결국 서로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한다.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와 서로 마주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거리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의 의미는 결국 공간이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고 마주하며 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까닭이다. 서로의 마음이 너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에게 얼마나 많은 실수와 상처를 주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네 삶에서도 유월의 숲처럼  푸르름 가득할 수 있다면 참으로 기분 좋고 행복할 일이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유월의 숲처럼 싱그러울 수 있다면 더없이 평안하고 여유로울 일이다. 그 유월의 숲에서 이는 바람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틈새'를 허락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복된 삶이고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생각처럼 쉽진 않지만, 유월의 숲에서 이는 바람처럼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조금씩 공간을 허락하는 여유롭고 넉넉한 오늘이면 좋겠다. 그 오늘이 긴 인생 여정에서 더욱 푸르고 싱그럽기를 소망해 본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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