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93
화랑세기花郞世紀, 13세 풍월주風月主 용춘공龍春公(3)
보스톤코리아  2019-12-02, 11:12:02 
풍월주 김용춘은 당대의 화랑도 중에서 가장 사표師表가 된 이화랑과 문노로 부터 음률과 무예 그리고 학문을 전수받았다. 한편 진흥왕의 딸로 등장하는 용명공주는 여기에서만 잠시 나온다. 진흥왕의 딸로 김용춘의 손윗누이라면 용명의 어머니는 지도이다. 그리고 용명은 진흥왕 사후 진평왕을 섬겼다. 여기서 주목해볼 부분은 ‘공의 처지를 열심히 도와 풍월주의 지위를 얻게했다’ 는 기록이다. 579년 진지왕은 어머니 사도태후와 노리부 등에 의해 ‘황음무도荒淫無道’ 하다 해서 폐위되었다. 그리고 곧 1개월 후 사망하였다(579년8월24일, 화랑세기에는 ‘전군열기殿君列記’ 을 인용했다면서 폐위되어 유궁幽宮에 3년간 살다가 붕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아들(들)은, 즉 용수와 용춘은 ‘폐족’ 의 후손으로 성골에서 족강族降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후일 진골의 신분으로 첫 왕위를 계승한 김춘추가 김용춘의 아들이기에…, (화랑세기에는 김용춘이 용수의 아우인데, 용수가 요절한 후 용춘이 형의 부인 천명공주와 결혼하면서 조카 김춘추를 양아들로 삼았다). 또 화랑세기에는 용수가 용춘의 형인데 정확하게 누구의 아들인지는 알 수 없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용춘공의 형인 용수전군龍樹殿君은 혹은 동태자의 아들이라고 하고 혹은 금태자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동태자는 진흥왕의 장자 동륜태자이고, 금태자는 차자 진지왕이다. 즉 용수와 용춘이 형제인지 사촌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좀더 자세히 보면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먼저 삼국사기 권5(신라본기 5, 654년3월), “태종무열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다.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 용춘龍春(혹은 용수龍樹라고도 함)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다. 왕비는 문명부인으로 각찬 서현舒玄의 딸이다.” 이 기록은 동일인으로 보인다. 다음도 삼국사기 신라본기(진평왕 44년, 622년)의 기록이다. “이해 2월에 이찬 용수를 내성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이찬은 신라 17관등에서 2등급이다. 그리고 7년 후 진평왕 51년, 629년의 신라본기 기록을 보면 “이해 가을 임금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쳤다.” 여기에는 용춘이 전시에 임시로 임명되는 대장군으로 출전했지만 당시의 관위를 알 수 없다. 같은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보면 “건복建福46년 기축 가을 8월, 왕이 이찬 임말리任末里와 파진찬 용춘龍春과 백룡白龍, 소판 대인大因과 서현舒玄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 낭비성을 치게 했다.” 건복46년은 기축년이고 629년이다. 즉 위의 본기에서 인용한 내용과 같은 기록이 김유신열전에 실려있다. 낭비성 전투 당시 임말리가 총사령관, 용춘과 서현 등이 부사령관이었다. 파진찬은 4등급, 소판은 3등급의 관위였다.

622년의 이찬 용수와 629년의 파진찬 용춘이 다른 이름(인물)과 낮은 관위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7년 후 관위가 강등되었을까? 진지왕의 후손들은 용수와 용춘 그리고 도화녀에게서 태어난 서자 비형랑의 세 아들이 있다. 그런데 학자들에 따라서는 용수와 용춘은 동일인이고, 비형랑마저 용춘의 신비한 능력을 설화로 기록했다고 보고 있다. 먼저 삼국유사(권1 기이2 도화녀 비형랑)에 실려있는 진지왕과 도화녀의 사랑, 그들의 아들인 비형鼻荊의 출생 내역을 간략하게 추려보면 <제25대 사륜왕의 시호는 진지대왕이다. 나라를 다스린지 4년만에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여 국인들이 폐위시켰다. 이보다 앞서 사량부에 사는 서녀庶女의 딸 도화녀가 아름다워 상관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화녀는 여자가 지킬 일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라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에 왕이 너를 죽인다면 어찌 하겠냐고 했지만, 차라리 죽음을 택하지 임금이라도 자신의 정조는 뺏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임금은 다시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고 하니 도화녀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도화녀는 집으로 왔다. 이 해에 왕은 폐위되어 죽었고, 3년 후에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그 열흘 후 밤중에 진지왕이 도화녀를 찾았다. 네가 옛날이 승낙했듯이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고 물었다. 도화녀는 부모의 허락을 받고 입방을 하였다. 그리고 왕은 7일간 머물고 갑자기 사라졌다. 그간 오색 구름이 항상 집을 덮고 향기가 방 안 가득했다. 그리고 도화녀는 임신을 하였고 달이 차서 해산할 무렵 천지가 진동을 하였고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비형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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