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미즈 쓰네오와 신라의 로마 문화
보스톤코리아  2019-05-06, 10:22:18 
40여년 전에 요시미즈 쓰네오는 와세다 대학에서 “동양 고대 유리의 연구”라는 논문을 쓰고 있었다. 연구과정에서 자료를 분석한 결과 3종류의 유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로마시대 로마제국에서 제작된 유리 그릇
2. 페르시안 글라스
3. 중국 계통 글라스
이중에서 대부분의 로만 글라스는 4~6세기 경 신라에서 한정적으로 출토된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시대의 백제 고분에서는 단 한 점의 로만 글라스도 출토되지 않고, 고구려 고분에서는 서관관자(西官菅子) 제 2호분에서 단 한 점의 로만 글라스가 출토된 것이 유일하였다.
그러나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정밀 조사해 보니 금은 제품, 순금제 장신구, 반지와 팔찌, 목걸이, 상감 유리, 구슬 등이 예외없이 출토되고, 이러한 장신구들이 저 유명한 그리스 로마에서 유행했던 디자인과 아주 강한 공통성을 가진 형태로 제작되었고, 로마에서 사용되던 누금세공이란 특수한 기법으로 만들어 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동일하게 중국 문화를 수용하는 영향권에 속해 왔다고 생각해 왔지만 신라 문화는 중국 문화와는 아주 다른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남대총을 비롯한 여러 고분에서 보여주는 로마 문물은 감옥천 팔찌, 금은 장신구 등 많은 것들을 헤아릴 수 있지만 그중 제일 귀한 보물은 유리그릇, 로만 글라스였다. 

황남대총 남분에서만 7점, 북분에서 5점의 후기 로만글라스가 나왔는데, 그물 무늬와 물결무늬 유리잔은 4~6세기 경에 아주 넓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은 지중해 동안 지방에서 만들어져 흑해지방으로 대량 수출되었고, 그다음에는 스텝루트와 기마 민족들에 의해 다른 로마계통 문물과 함께 전래되었을 것이다.

당시 신라에서는 모두 10기에 달하는 고분에서 25점의 로만 글라스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황남대총을 비롯한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등 모든 고분에서도 로만 글라스가 출토되었다. 옥전 고분은 표면에 청색점을 두 줄로 찍은 것이 특징인데, 서아시아 유리잔으로 경주이외의 지역에서 유일하게 발굴된 유리잔이다.

(좌)봉수형 유리병(황남대총 남분), 국보 193호, 신라 5세기 이병은 그리스에서 유래한 오이노코에(Oinichoe) 병의 하나이다. 시리아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이 병의 주둥이 부분은 나팔잎 모양이며, 중국에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병’이라고 불려졌다.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혔는데, 이러한 장식 기법은 당시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파란색 손잡이를 금실로 감아 보강한 것으로 보아 금보다 더 유리를 귀중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우)시리아에서 4세기 경에 제작된 유리병으로 오카야마 시립 오리엔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봉수형 유리병과 유사한 모양이다.
(좌)봉수형 유리병(황남대총 남분), 국보 193호, 신라 5세기 이병은 그리스에서 유래한 오이노코에(Oinichoe) 병의 하나이다. 시리아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이 병의 주둥이 부분은 나팔잎 모양이며, 중국에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병’이라고 불려졌다.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혔는데, 이러한 장식 기법은 당시에 유행했던 양식이다. 파란색 손잡이를 금실로 감아 보강한 것으로 보아 금보다 더 유리를 귀중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우)시리아에서 4세기 경에 제작된 유리병으로 오카야마 시립 오리엔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봉수형 유리병과 유사한 모양이다.
 
25개 로만 글라스 중에서 으뜸가는 백미는 국보 193호인 황님대총 남분의 봉수형 유리병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에서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불리는 이도기는 시리아 동부 연안에서 주로 제작되어 술을 퍼 담을 주전자처럼 쓰였다. 이 병의 주둥이 부분은 나팔꽃잎 모양으로 중국에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봉수병, 또는 봉수호(鳳首壺)라고 불려졌다. 

이러한 형태의 병은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금속 그릇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봉수형 유리병의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혔는데 이러한 기법은 당시에 유행했던 장식기법이었다. 

파란색 손잡이를 귀한 금실로 감아 보강 한 것으로 보아 금보다는 유리를 더 귀중하게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황님대총에는 무려 58,500이나 되는 보물이 출토되어 많은 양의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에 눈을 끄는 것 중, 두가지 만 요시미즈 쓰네오의 언급을 겻들어 소개한다.

황남대총 북분은 왕비의 능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른손 손가락 위치에 5개의 반지를 끼고 있고, 왼손에는 6개의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진 모습으로 출토되었다. 왼손 손가락 하나에는 2개의 반지가 끼워진 셈이다. 황님대총 왕비는 모두 11개의 반지를 양손에 끼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로마 사람들은 양손에 많은 반지를 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플리니우스의 상세한 설명이 소개되고 있다. 

황남대총, 황남대총 반지 황남대총 금관은 왕비가 주인이고 왕은 자격미달로 은관을 쓰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왕비의 손가락에 있어야 할 위치에 오른손에 5개의 반지를 끼고 왼손에는 6개의 반지를 끼고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 로마 사람들은 양손에 많은 반지를 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신라에는 로마의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던 듯하다.
황남대총, 황남대총 반지 황남대총 금관은 왕비가 주인이고 왕은 자격미달로 은관을 쓰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왕비의 손가락에 있어야 할 위치에 오른손에 5개의 반지를 끼고 왼손에는 6개의 반지를 끼고 있는 사실이다. 예전에 로마 사람들은 양손에 많은 반지를 끼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신라에는 로마의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던 듯하다.
 
원래 로마에서 반지는 손가락 하나 중 약지에 끼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러다가 검지에 끼는 것이 관습이 되었고 그다음에는 새끼 손가락에 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가운데 손가락 만 빼고는 나머지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끼게 되었다. 로마 원로원이나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던 반지끼는 방법에도 가운데 손가락에는 끼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플리니우스의 반지 끼는 방법은 로마 문화를 수용했던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20개나 되는 반지와 왕의 무덤인 남분에서 출토된 19개나 되는 반지들도 이런 로마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1세기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로마제국 당국자는 외국인 병사들에게 포상으로 금목걸이를 주었지만 정작 로마 시민들에게는 은 목걸이만 주었다.” 반면에 로마 시민들에게는 팔찌를 주었는데, 팔찌는 외국인들에겐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로마 식민지에서 출토되는 금사슬 목걸이와 팔찌에는 이러한 로마 제국의 관습이 반영되고 있었다. 신라 왕릉 출토 금목걸이는 머나먼 로마 세계의 관습이 러시아 남부의 로마 문화권을 거쳐 신라까지 전달되었던 것이다. 

독자들은 황남대총에서 로마의 금사슬과 팔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플리니우스 박물지는 서기 79년에 고대의 모든 지식을 망라한 백과사전으로 유럽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원전으로 서기 79년부터 17세기까지 장장 1,700년에 걸쳐 편찬되었다. 플리니우스는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을 지켜보다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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