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15] 있어도 발음되지 않는 g(그) 것
보스톤코리아  2018-05-07, 10:52:59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한 가지 패턴을 볼 수 있다. 잘 하는 학생은 지도가 필요 없고, 못하는 학생은 지도를 해도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교육이 필요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인류가 생존한 이래 교육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다만 교육이 효과를 보려면,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하며, 그에 따른 계획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진단도 없이 무작정 원대한 목표를 세우거나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벗어나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돌진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유능한 의사라고 해서 모든 환자를 치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단은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단어가 약한 학생은 독해가 약할 수밖에 없다. 독해를 못하는 학생이 논리적 사고가 강할 수 없다. 글 읽기는 종합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외국어로 된 글 읽기는 해당 외국어의 단어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어디서 그걸 알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식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자가 번식을 한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연상(association)이라 부른다. 

속성으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필자는 지도를 시작하기 전에 현실적 목표치를 물어본다. 상상 속의 멋진 목표 말고. 예를 들어 토플 80점을 받은 학생이 한 달 동안 열심히 해서 100점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그런 학생에게는 목표 이전에 먼저 왜 80점인가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일이 필요하다. 건강진단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듯, 지도가 필요한 학생도 무엇이 약한지를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단’이란 단어 diagnosis는 ‘~을 통과해서’라는 접두사 dia-와 ‘알다’란 그리스어 gnosis의 결합이다. 부분만 보아서는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없고 전체를 꿰뚫어 보아야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각선은 전체를 가로질러 마주보는 두 각을 연결한 선이므로 diagonal이고, 원에서 중심점을 지나 마주보는 두 점을 연결한 선은 diameter(지름)라 한다. 속이 내비쳐서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diaphanous라 한다. 세계적 영화제로 발전한 부산영화제에서는 아리따운 여배우들이 속살이 보이는 시스루 옷을 입고 어쩌구 하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see-through는 라틴어식으로 하자면 diaphanous가 되겠다. 물론 dia-가 다 이런 뜻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아몬드가 죽으면 diamond가 된다는 아재개그에서 dia-는 그런 접두사가 아니다.

‘진단’이란 영어단어 diagnosis의 두 번째 부분 -gnosis는 아주 복잡하다. 우선 영어에서는 n앞에 오는 자음이 발음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know, knave, knight, gnaw, gnat에서 /k, g/는 발음되지 않는다. 영어의 사촌인 독일어에는 이러한 규칙이 없다. 따라서 knave(악동)의 동족어인 knabe(아이)는 [크나베]로 발음된다. 

그럼 diagnosis는 왜 [다이애그너시스]로 발음할까. 그건 (gn- 앞에 추가된) 모음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도 ‘값’일 때는 /ㅅ/이 발음되지 않지만 ‘값이’라고 모음이 따르면 [갑씨]라고 발음되는 것과 비슷하다. sign에서도 /g/는 발음되지 않지만 signature처럼 모음이 첨가되면 음절구조가 바뀌어 [시그니쳐]라고 발음된다. design[디자인]에서도 /g/가 묵음이지만 명사형인 designation에서는 /g/가 발음되어 [데지그네이션]이 된다. 하나님이 계시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을 가지는 agnosticism도 부정 접두사 a-가 첨가됨으로써 /g/가 발음되므로 [애그노스티씨즘]이다. ‘순결한’이란 뜻을 가지는 이름 Agnes는 그리스어 hagnos에서 온 것으로 모음이 있기 때문에 [아그네스]이고, 닉슨 아래서 부통령을 지낸 Spiro Agnew는 [스피로 애그뉴]이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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