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Locker Room
보스톤코리아  2017-12-21, 18:22:12 
크리스마스와 함께 명절 시즌이다. 오래전 한국에선 명절이면 목욕탕에 다녀와야 했다. 깨끗한 몸으로 명절을 맞기 위함이다. 나태주 시인이 쓴 ‘목욕’이란 시이다. 시인도 목욕탕에 다녀와 때를 말끔히 닦아낸 모양이다. 시는 무척 짧은데 가벼운 건 아니다. 

아무리 씻어도 
내장까지는 
다 씻어낼 수 없잖아요?
(나태주, 목욕)

어릴적이다. 목욕탕에 가면, 할아버지들 뜨거운 탕 속에서 흥얼거렸다. 머리엔 젖은 수건을 올려놓기도 했다. 단가短歌인지, 창唱인지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턱도 없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하나에서 백까지 세는거라 하더라. 뜨거운 탕에서 얼마나 오래 견디나 시험한다고도 했다.  

아침이면 출근 전에 들르는 곳이 있다. 헬쓰클럽 ‘탈의실’ (Locker Room)이다. 그 곳에서 거의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다. 시간대가 엇비슷하니 만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들 이다. 내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모두 남자이다. 나는 남자 탈의실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옷을 갈아 입으면서 탈의실 안은 왁자지껄 제법 소란스럽다. 떠들썩한 분위기 중에 나오는 대화내용은 그저 그렇다. 스포츠, 직장과 자식들 이야기, 출장갔던 일. 정치이야기는 드물다. 그러니 뭐 대단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했다는 저질농담도 지나가는 허접한 화제였을 것이다. 이름하여 ‘Locker room talk’ 이라 했다.

어느 판소리 명창은 목을 틔우기 위해 폭포수 물줄기를 받으며 연습했다 하던가. 목소리가 물소리를 이기고 제 귀에 들리면 목청이 틔인거라 했다. 세찬 물소리를 이길만한 목청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 중에도  재미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취미가 범상치 않다. 그는 샤워하면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 한바탕 이사람 저사람과 인사한 다음, 샤워할 적엔 노래가락이 흘러나오는 거다. 노래는 흐르지 않고, 탈의실을 채우고도 넘친다. 그 사람은 땀흘려 운동하는 걸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노래로 부족분을 채우려는 심사인게다. 민폐라 할 수 있을 텐데, 듣는 사람들 그냥 웃고 만다. 그 사람은 판소리 명창에 도전하려는지 그건 모르겠다. 

요샌 한국에선 목욕탕이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우나라던가, 찜질방이라던가. 연말인데, 가는 해에 묵었던 때를 모두 벗기고 성탄절과 새해를 맞으시라. 

메리크리스마스!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한 13:10)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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