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때 규장각 도서를 지켜낸 故 백린 선생
보스톤코리아  2015-10-05, 12:02:14 
지난 5월 26일 뉴튼 소재  자택에서
지난 5월 26일 뉴튼 소재 자택에서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나뭇잎이 새싹을 피운 5월이었다. 백린 선생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김은한 박사를 모시고 뉴튼의 자택을 향했다. 

집에 들어가자 누워있던 백 선생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잠시 흐트러져 있던 그의 눈빛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욱 빛났다. 백 선생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백린 선생은 얘기 도중 여러번 규장각 도서 16만권을 현대적인 목록법에 의해 한글로 정리한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만큼 그의 애착을 느낀다는 얘기다. 

백린 선생은 장기태 선생의 도움을 받아 규장각의 사서로 들어갔다. 이 때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연세대에 들어가 도서관학과 역사학을 공부했다. 

특히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규장각의 조선왕조실록 2만권을 가지고 부산에 피난가 이를 모두 정리해 3년간 보관했다가 1951년도 서울대학교 전시 연합대학을 개교했을 때 2만권을 가지고 서울대 도서관의 문을 열었다. 

서울대 도서관은 한국 전쟁후 북한군들이 책을 가져가려고 모두 서고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려 놓았기 때문에 엉망이었다. 당시 60만권의 도서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단 3개월만에 정리를 마쳐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던 최기남 총장의 지시로 서울대 최초의 도서과장이 됐다. 당시 호기현 사서장은 정리에 약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던 상황이었다. 

백린 선생은 “모든 일이 열성과 시기가 맞아야 한다. 그 사람 능력이 있을 때 반드시 시기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 어떻게 남이 20년 걸리는데 나는 3개월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가 부산에 도서관에 2만권을 가지고 내려가서 1년 반 동안 도서 정리할 때 이 경험을 살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도서과장으로 재직하면서 규장각 도서 16만권의 현대목록을 작성하게 됐다. 규장각 도서가 하버드에 왔을 때 그 목록의 작성자를 찾게 됐고 그게 인연이 되어 하버드 옌칭 도서관의 사서로 초청됐다. 69년 1년동안 재직했지만 서울대의 요청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72년 다시 도미했다.  

20여년간 하버드 옌칭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후 1993년 은퇴했다. 한국인이 없어 옌칭의 도서목록이 모두 중국식으로 되었던 것을 한국식으로 바로 잡았다. 도서목록을 모두 손으로 작성해 손이 굳을 정도였다. 한 번은 옌칭의 와그너 관장이 한국 고서를 들고와 언제의 책이냐고 물어 육갑에 따른 기록과 종이 질로 연도를 예측했다. 이렇게 육갑을 이야기 하자 그 이후로는 매년 새해에 띠와 동물의 의미를 물어 설명하곤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보스톤 한인교회에서도 매년 새해에 이를 설명하고 덕담을 건넸다. 

1978년에는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2대 교장을 맡아 8년간 재직했다. 그는 뉴잉글랜드 개교 30주년 문집에서 교장을 맡은 후 한국학교를 3번이나 옮겨야 했고 재정적으로 궁핍했었음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1985년 조성구 당시 한인회장의 요구로 한국학교를 폐쇄하고 성요한 교회에 이를 넘겼다. 

이외에 2대 노인회장을 역임하며 노인대학을 만드는 등 노인회 활동은 물론 미주 한인이민 백주년을 기념해 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뉴잉글랜드 한인사를 작성하는데 큰 힘을 쏟았다. 

백린 선생은 한인들에게  1. 왜 미국에 이민했는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2. 학교를 다닐것인가 장사를 할 거인가. 확실히 자신을 알라. 자신의 능력과 자신을 알라. 3. 열심히 살아야 한다. 가져온 것이 없고 능력이 모자라도 거짓말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4., 이민사회 사람이니까 서로 사랑해라. 5,  건실하게 한인사회 역사를 발전시켜 가야 한다. 고 조언했다.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백린 선생은 몇번 기침으로 말을 멈추곤 했다. 청력이 많이 떨어져 질문을 종이에 써서 건네야 했으며 기억력도 많이 떨어져 정확한 연도를 틀리는 경우도 있었다. 부인 최선경 여사가 이를 바로 잡아주었다. 

의사의 선고는 짧은 2개월이었지만 차분히 주변을 정리했던 백린 선생은 9월 마지막날 가을비가 쏟아지던 새벽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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