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과 건국절
보스톤코리아  2015-08-24, 17:01:45 
일요일 밤 심야로 어렵사리 영화 <암살>을 봤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면서 벅차 오르는 영화의 감동을 자꾸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영화 마지막 친일파 염석진의 가슴을 꿰뚫었던 총알이 바로 문제였다. 현실과 너무도 괴리된 마지막 장면이 영화적 과거를 여행하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친일은 결코 청산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은 진정으로 해방되지 않았다. 한국사회 기득권 층에서 친일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친일 청산의 기치를 내건 반민특위가 단 한 명의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라지면서 친일 인물들은 더 이상 역사와 민족에 대한 죄인이 아니었다. 물론 친일파는 죽었다. 그러나 늙어서 사라진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친일파는 한국사회에 끼친 악영향으로 광복 70주년에도 버젓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일보는 올해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 3대가 망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처참하다.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4대까지 총 1115명을 설문한 결과, 월 개인 소득 200만원 이하가 75.2%였다. 독립유공자들의 후손으로 내려갈수록 더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다. 대부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빈곤에 시달렸다. 이 같은 참담한 현실에도 우리는 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걸까.

한국일보와 다르게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한국 친일파의 현 주소를 확인하는 특집을 실었다. 이 언론은 지난 2005년 친일 인명사전을 통해 확정된 1006명의 친일파들 중 1117명의 친일 후손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친일 후손 중 191명이 대학교수였고 의사가 147명, 기업인이 376명이었다. 삼성의 후계자로 확정된 이재용 삼성회장을 비롯해 조선, 중앙, 동아 일보 3대 언론사 사주와 자녀들이 친일 후손이다. 

친일 후손중 서울대 출신이 무려 22.8%나 됐다. 그중 연세대 졸업생이 62명 고려대 졸업생이 32명이었으며 총 후손 중 외국 유학은 310명에 달했다. 대표적인 친일 후손은 이인호 KBS 이사장이다.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1954년 당시 보스톤의 웰슬리 여대에서 유학생활을 지냈다. 한국의 기득권 층이 많은 친일파 후손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장남인 차영조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친일 후손들의 사과에 관해 자신 의견을 밝혔다. “말로라도 그렇게 하고 끌어 안습니다. 말만해도 고맙다고… 근데 그렇지 않고 자꾸 우리 역사의 흔적을 흐리려고 하니까, 가슴에 상처만 남고 못만 가슴에 더 들어가는 거에요.” 

부와 권력을 가진 친일 후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성은 고사하고 역사의 흔적을 흐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멍에인 친일을 벗어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교학사 교과서의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적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교과서를 옹호하는 뉴라이트 측은 주로 식민지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남한 정부 건국의 정통성, 민주화 운동의 종북성을 내세운다. 

친일의 최대 무기는 반공이데올로기였다.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이용해 내세우는 반공이데올로기는 친일이라는 치부를 가리는 전가의 보도였다.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측을 좌파,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우파, 보수세력으로 2분화해버린다. 이들의 주장으로 인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친일 인명사전 제작이 바로 좌파들의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역사 다시 쓰기의 맥락에서 나온 가장 최근의 전략은 건국절이다. 암살을 국회로 초청 상영하고 만세삼창을 외쳤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건국절의 제정을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닌다. 새누리당의 다수 의원들도 이 같은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일 사주를 둔 조선일보는 세계에서 건국절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호들갑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한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대통령이 바로 이 나라를 건국한 국부다. 이승만을 국부로 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미 군정이 용인해 사용했었던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친일 내각을 구성했던 정부다. 따라서 건국절은 친일의 옷을 벗고 반공의 완장을 찬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세운 개국 공신의 위치를 주게 된다. 이젠 일시적 분장이 아니라 완벽한 성형미인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헌법에 규정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의거 정신을 무시해버린 위헌 소지도 내포하고 있다. 

친일파가 한국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옳은 일을 하게 되면 3대가 망하는 손해를 보고 권력에 붙어야 잘먹고 잘 산다는 가치관의 전도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 같이 학습된 패배주의에 서 있다. 돈도 안되는데 혼자만 고결한 척 하지말라. 정치자금 안받았던 정권이 어딨어. 국정원 공작 안한 정권이 없는데 지적해서 뭘하나. 이 같은 말을 주위에서 늘 듣는 소리다. 영화 <암살>에서 “일본놈 하나 죽인다고 해서 독립이 되느냐”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학습된 패배주의적 발언이다. 그러나 안옥윤은 이를 통해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친일이 만들어논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친일청산, 반성 없이 애국보수로 성형수술한 친일 후손의 가슴에 성형전 사진을 붙이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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