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91회
보스톤코리아  2015-03-30, 11:25:37 
3월도 훌쩍 중순을 지나고 4월을 맞을 채비를 시작한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이제야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 그래서일까. 여느 해보다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어디 봄을 기다리는 이가 나뿐일까마는 혹한의 긴 겨울 한파를 견뎌낸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는 소리 마음으로 들려온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그 봄이 오긴 올 모양이다. 혼자이지 않은 세상에서 생명은 이렇게 보일 듯 말 듯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그렇게 더불어 흐르는 것이다. 네 속에 내가 흐르고 내 속에 네가 흘러 멈추지 않고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봄이 되니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들이 봄햇살 사이를 비집고 활개를 친다. 모두가 봄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침이면 창가의 햇살을 쫓아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눕는 우리 집 귀염둥이 티노(강아지)처럼 다들 봄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보다. 이 봄에 나도 긴 겨울의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말간 봄기운을 마음으로 가슴으로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집안 청소부터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이 봄에는 그렇게 집안의 구석구석을 정리해보기로 계획을 세워본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기지개를 켜며.

한 5년 전 산을 오르기 시작하며 삶의 방향과 모습이 단조로워진 까닭에 밖으로 치장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삶에서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선택하며 사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며 살고 있다. 옷장에 쌓여 있는 내 옷가지들과 여러 가방들 그리고 지하의 신발장에 놓인 신발도 모자라 내려가는 계단에 차례로 놓인 구두와 운동화, 골프화 그리고 이제는 등산화까지 말이다. 문득 이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이 쌓인 물건들에 내 마음마저 눌리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런 나를 보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우리 집에 두 사람이 있는데 딸아이와 남편이다.
"엄마, 엄마 옷장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 가득한 백화점인걸!!"하며 엄마를 은근히 놀리는 딸아이와.
"우리 옷장에는 내 옷은 몇 벌 없는 거 알지??"하며 아내를 어떻게라도 무한하게 하려는 남편이 있다.
"그래, 정말 여기는 뭐든 다 있는 멋진 백화점이라니까."
그렇게 나는 웃음과 함께 대답을 해주는 것이다. 뭐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아니라고 할 그 무엇이 있을까.

버리지 못해 쌓이는 것이 어찌 이렇듯 눈에 보이는 것들 뿐일까. 이제는 슬슬 연습을 하자.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놓는 연습을 말이다. 모두가 욕심인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얻으려다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많았을까. 어느 공간에서나 여백이 없이 가득 차면 답답하지 않던가. 우선 내가 살고 싶어 숨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의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달리해 내가 자식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등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저것 부연설명은 때로 구차한 변명 같아 그냥 나를 위한 것이라고.

구분은 하며 살아야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것이든 간에 아끼는 것과 쌓아두는 것은 의미가 다르지 않을까. 그 무엇이든 아끼는 것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고 귀하고 소중해서 간직하는 것이라면 쌓아두는 것은 더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의 욕심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마음의 상태이고 모습일까. 세상 나이가 어려서 부리는 욕심은 가끔 상큼한 애교(시샘) 정도로 봐줄 수 있지만, 세상 나이 지천명의 언덕을 오른 나이쯤에는 조금은 마음이 궁색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마음에서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그 어떤 심리적 허증 같은 거.

여기저기 가득 쌓였던 눈이 정말 녹지 않을 것 같았는데 지난주 며칠 따뜻해진 날씨에 눈이 녹기 시작했다. 길고도 긴 겨울로 정말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른 아침이면 창살을 비집고 햇살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니 봄이 오긴 올 모양이다. 어쩌면 이미 와 있었는지도 모를 봄을 혹여 내가 맞이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좀 가벼워지고 싶다. 뭐든 쉬이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이 봄에 집 안 청소부터 시작해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집 안 구석구석의 먼지도 털어내면서 그렇게 몸도 마음도 덜어내어 가벼워지는 연습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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