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대장의 행진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3:40:22 
2014-08-15

 "엄마, 김 서방(사위)이 미국 보스턴에서 '산악회 회장'이에요."
 "그럼, 돈도 많이 받는 거야?"
 
 함께 산을 오르며 보스턴 산악회 회장의 아내인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얘기를 전해준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 친정어머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딸과 나눈 다정한 얘기를 내게 나눠준 것이다. 그래, 이 세상에서 '회장' 하면 '돈'과 비례하는 세상 아니던가. 돈이 없어도 회장 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배가 불리고 넉넉해지는 그 회장의 이름에 돈은커녕 돈 대신 늘 칭찬보다는 불평을 더 들어야 하는 회장 자리도 있으니 바로 산악회 회장인 산악 대장의 명패다.

 보스턴 산악회 초대 회장으로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사전(답사) 준비와 회원들의 안전 산행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곁에서 보는 회원들 모두에게 귀감이 간다.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산악회 단체의 회장은 특별한 특권도 없이 봉사하는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산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 정신이 없다면 아마도 그 자리는 어느 누구도 맡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 산행을 위해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임원들의 철두철미한 준비가 없이는 단 한 번의 산행도 성공으로 이끌 수 없으리란 생각을 한다.

 보스턴 산악회 회장의 자리는 참으로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만 3년을 지나 4년 차에 오른 아직은 서툰 초보 산행자다. 토요일의 일정 중 아주 특별한 약속이 아니라면 산행을 우선순위의 첫 번째로 놓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말없이 산악회 회장과 부회장을 비롯하여 임원들의 노고에 늘 감사해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트레일을 찾기 위해 답사를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그들에게 지워진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저 일반 회원들이야 날짜와 시간에 맞춰 따라가면 그만이지만, 그 하루의 산행 일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의 시간과 노고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한국을 방문하면 산을 함께 오르는 몇 친구 그룹이 있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은 각 산악회에서 오래도록 산악대장을 한 베테랑 산악인들이다. 자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끼는 오라버니와 그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말이 없고 우직하고 뚝심 좋은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친구와 그 외의 친구들이 몇 있어 산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아직은 산에 대헤서 모르는 것이 많은 초보이기에 산을 오를 때 왠만하면 산을 잘 아는 베테랑 친구들과 오르는 편이다. 그리고 한국 방문 중에 가끔은 친정 조카와 조카 사위가 산을 좋아해 셋이서 함께 오르기도 한다.

 엊그제는 바위로 뒤덮인 King Ravine Trail을 5시간 남짓 올라 정상인 Mt. Adams에 도착했다. 참으로 험준한 산행길이었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틈 하나 보이지 않는 커다란 바위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곳으로 고개를 내밀어 저쪽으로 빠져나가야 할지 막막할 만큼 그렇게 쉽지 않은 트레일이었다. 산의 길을 제대로 모르면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그런 산길을 말이다.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막막할 때 대장이 필요한 것이다. 산악대장님과 늘 새로운 트레일을 개척하시는 조장님이 함께 있어 든든했던 산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순간순간 아찔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물론,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에 따라 느낌은 다를테지만, 산을 오른 후의 느낌은 언제나 힘들게 올랐을 때 더욱 감동을 받고 그 감격이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엊그제 올랐던 '킹 라빈 트레일'은 미국인들도 힘들다고 다른 길을 택해 돌아가는 길이란다. 그래서 더욱 한번 올라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온 산이 모두 바위로 뒤덮인 듯 보이는 산행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은 어려운 산이었다. 날카롭게 각을 세운 바위에서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큰일을 만날 것 같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했던 산행길이었다. 어쩌면 바위도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에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산을 오르는 내내 산악대장님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Map(산행지도)을 손에 쥐고 맞는 길이지만 혹여 다른 길은 아닐까 싶어 몇 번을 펼쳐 확인한다. 언제나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산악회 회장님의 그 준비에 산악회 회원들은 고마운 마음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한국에서 연세 드신 장모님이 사위가 보스턴 산악회 회장이라는 딸의 말에 돈을 많이 받느냐고 물어보셨던 그 돈보다 더 값진 진솔한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때로는 산악회를 이끌어가기가 어찌 쉽기만 할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산과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산악대장의 행진일 뿐인 것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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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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