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26 회
보스톤코리아  2013-12-09, 11:41:07 
배움의 끝이 어디 있을까. 세상을 살면 살수록 어찌 이리도 부족하고 어리석은지 나 자신을 잠시 돌아보게 한다. 연세 드신 어른들께 배우는 부분도 많지만, 요즘은 젊은 친구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가족을 챙기는 정성의 마음인 음식이면 음식, 자녀들을 챙기는 철저한 교육이면 교육 사회 참여와 봉사는 또 어떻던가. 때로는 생기발랄한 젊은 주부들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고 저절로 행복이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이려니 생각하니 세상이 더욱 넓게 보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으로 하루를 맞는다.

지난 한국 방문 때에는 귀한 시간을 얻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상담학과 학생들과 함께 2시간 30분의 강의 시간을 두 번씩이나 얻게 되었다. 굳이 강의랄 것까지 뭐 있을까. 그저 나의 얘기를 함께 나누었을 뿐이다. 지천명에 오른 인생 중반의 한 가정을 가진 주부로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 그리고 우리 집 막내가 대학 4학년이니 연년생인 세 아이 모두 대학을 졸업시킨 엄마로서 나눌 얘기는 무궁무진하지 않던가. 전문적인 상담학 공부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참으로 내게 귀한 시간이었다. 20명 안팎의 학생들은 반수 이상이 불혹을 훌쩍 넘긴 만학도(晩學徒)였기에 더욱 감명 깊었다.

서로 둘러앉아 얘길 나누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니 질의응답 시간도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준비하는 시간이 내게는 더욱 행복했던 시간이다. 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많음을 알기에 준비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서로 눈을 맞추고 충실했으니 그것으로 만족은 아닐까 싶다. 가정에서 주부로 지내다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볼 겸 공부를 시작하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또한, 가정생활이 여유로운 이들은 사회 참여와 봉사를 위해 전문적인 공부를 더 배우고 싶어 온 이들도 몇 있었다. 

몇 년 전 남편이 지나는 말로 기분 좋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세 아이를 정신없이 키우며 지내다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모양이다. 세 아이를 키우며 공부를 더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이버 대학교에서 대학원(상담학과) 코스를 밟고 있는 터였다. 남편이 하는 얘기가 차라리 사이버가 아닌 대학원 코스를 제대로 밟아볼 생각이 있느냐고 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다면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남편의 얘기를 기분 좋게 듣고 현실에 묻혀 또 몇 년이 흘렀다.

"공부는 때가 있단다" 하시던 친정어머니 말씀이 귀에 어른거린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내 어머니를 흉내 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일 게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안 하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나 역시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에 매달리던 아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국을 방문하면 여전히 어릴 적 담임(국어) 선생님 두 분과는 인연을 놓지 않고 40여 년이 다 되도록 찾아뵙고 있으니 아주 말썽꾸러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부모님처럼 제자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으시니 내 인생에서 늘 귀한 멘토로 계신다.

화학을 전공하고 비지니스를 전공한 남편은 머리 회전의 빠름의 척도인 IQ(intelligence quotient)는 아내인 나보다 조금은 높은지 모르지만, 21세기에 꼭 필요한 감성의 척도인 EQ(Educational Quotient)는 남편보다 아내인 내가 좀 높지 않을까 싶다. 자랑이 아닌 어떤 일에 있어 그 누구의 인정보다도 제일 가까운 남편이나 아내의 인정이 삶에서 서로에게 더욱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칭찬에 인색한 남편이 EQ에 대해서만큼은 아내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 어떤 누구의 칭찬보다고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세 아이는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많이 닮아 감성보다는 이성에 철저한 편이다.

이렇듯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하든 안 하든 뭐 그리 중요할까. 더욱 중요한 것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다.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가정의 소홀함을 첫 번째로 들 수 있고 두 번째로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무겁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하고 싶어 상담심리대학원 두 곳에 입학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내년 5월이면 막내 녀석이 대학교를 졸업하니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해는 준비를 위한 공부를 더 하고 2015년 봄에 아마도 대학원에 입학하게 될 것이다. 늦은 공부지만 만학도(晩學徒)의 꿈은 오늘도 여전히 멈추지 않고 꿈틀거린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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