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02 회
보스톤코리아  2013-06-17, 14:09:20 
당신 곁을 떠나온지 언 30년 보고픔으로 있던 그 마음에 응어리 하나 남기고 하얀 그리움 되어 내 곁을 떠나가신지 언 2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 없는 그 세월은 내게 참으로 모진 세월입니다. 당신을 보낸지 언 20년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건만, 아니 이젠 잊힐 만도 하건만, 당신은 여전히 내 가슴 깊이 남아 하얀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연둣빛 봄이 아장아장 찾아들면 솔솔 부는 봄바람에 물먹은 버드나무가지 흔들리고 겨자 빛 버들잎 바람에 춤을 추는 봄날 더없이 그리운 얼굴이 있습니다. 그 하얀 그리움에 견딜 수 없어 남몰래 소리 없이 울 때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리운 그 이름,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따뜻한 품으로 여전히 내 곁에 계십니다. 세상 사는 일이 힘들고 버겁다고 느낄 때면 언제나 말없이 찾아오셔서 등을 토닥여주시며 안아주시는 그 따뜻한 사랑으로 또 일어서곤 했습니다. 쉰에 얻은 늦둥이 막내딸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아버지의 그 사랑과 정성으로 오늘도 여기에 서 있습니다. 언제나 조용하신 성품으로 끝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그 사랑은 잊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당신이 떠난 그 자리 늦둥이 막내딸 가슴에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 어쩌면 삶의 틈새에서 더욱 외로웠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그 사랑이 너무도 그리워서.

유교 집안에서 아들자식을 낳고도 키우지 못하신 죄스러움으로 계셨을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 서운함을 딸자식들 앞에서 표현하시거나 불평하지 않으셨던 기억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자식 키우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과 서운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평생 가슴에 한(恨)으로 남은 응어리 하나 담고 사셨지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니 곁에서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그 시간에 많이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아버지 병상에 계셨던 6년의 세월, 그 시간 어머니는 더욱 죄스러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돌보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자식 낳고도 키우지 못한 그 평생의 한(恨)을 삯이며.

어릴 적 공부를 잘해 받는 우등상은 타지 못했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상장이라도 타올 때면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가 더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오십에 얻은 늦둥이 막내딸은 어린 마음에 늙은 아버지 그 사랑보다도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친구들 눈에 띌까 염려하며 감추고 싶었던 철없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젊은 아버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술 한 잔 못 하시고 조용하신 성품이니 가정에서도 꼼꼼해서 얼렁뚱땅이 없는 아버지를 가끔 술 좋아하시는 친구들의 아버지와 비교하며 부러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른 봄이면 냇가에서 버들가지 꺾어 피리를 만들어주시고 가재를 잡아주셨던 기억도 스쳐지납니다. 아버지는 창(소리)을 좋아하셨고 피리를 좋아하셨습니다. TV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국악인 이은관님의 '베뱅이 굿'을 좋아하셨고, TV가 나오면서는 김영임 님의 '회심곡'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유교 집안의 아버지는 창과 피리를 좋아하시면서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동네 노인분들의 즐거운 모임 행사가 있을 때 한 두 번 피리를 부셨던 기억입니다. 아버지는 가끔 악보도 없는 누런 노랫책을 들추며 창을 부르시곤 했던 기억입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께서는 '예술 끼'가 많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그 '끼'를 시대(유교 집안)와 선택에 관한 책임(가족)으로 꾹꾹 누르시고 감추시며 평생을 사셨다는 생각을 늦게야 해봅니다. 이제야 가끔 아버지의 그 가슴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가끔 내 가슴 속에도 아버지의 그 '끼'가 남아 꿈틀거리고 출렁이며 요동치는 까닭입니다. 아버지의 그 '끼'를 막내 언니의 딸인 친정 조카가 외할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았던 모양입니다. 플룻을 전공한 친정 조카는 그 음악적인 끼는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좋아하며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여느 형제들보다 늦둥이 막내라 아버지께 버릇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받았던 기억입니다. 가끔 언니들이 샘을 낼 만큼 아버지의 늦둥이 사랑은 극진했습니다. 가끔 우리 집 딸아이가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해 부녀간에 다정하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잠시 나도 내 아버지의 막내딸이 되어보곤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 늘 보고픔으로 있었고 기다림으로 있어 아버지의 그 사랑은 더욱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잊을 때도 되었건만, 아니 잊힐 만도 하건만, 늘 가슴에 남아 흐르는 그리운 그 이름, 아버지!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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