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00 회
보스톤코리아  2013-06-03, 12:20:06 
여름방학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덩치가 큰 녀석 둘이 집 안 부엌에서 음식을 찾아 먹는다고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오가면 정신이 없다. 딸아이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톤 시내에서 인턴십을 하며 집에서 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하던 자리에서 옮겨 8월부터는 Elementary School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일모레는 보스톤 시내에 방을 얻어 이사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집을 떠나면 대학교 기숙사에서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독립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엄마 아빠 곁을 떠나 살면 뭘 그리 좋을까마는 그래도 좋단다.

요즘은 Job(직장) 찾기가 어려워 대학교를 졸업해도 아이들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의 조바심으로 끙끙거리며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려고 알아보는 아이를 보면서 내색은 안 했지만, 늘 곁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도 지난 한 해 동안도 인턴십을 하니 넉넉한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고 겨우 제 오가는 경비와 점심값 정도나 벌었을까. 물론 일자리를 찾는데 지금의 경제 상황이 어렵지만, 무엇인가 제 일을 찾아야겠기에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딸아이는 내후년쯤에 대학원 계획이 있어 이번 일자리도 자신의 진로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을 한다.

큰 녀석은 지금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아이다. 올 9월 법대(School of Law) 입학을 놓고 조금이라도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려고 결정을 못 하고 있는 중이다. 8월에는 결정을 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생각이 깊은 아이라 조금 더 기다려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름방학 석 달을 집에서 쉰다고 해도 엄마는 특별히 할 말이 없겠다 싶었다. 법대 입학을 놓고 공부하느라 잠을 아껴가며 여간 힘들지 않았을 녀석을 생각해서이다. 늘 생각이 깊어 남편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자식이다. 집에 와 있는 동안에도 허튼 돈은 쓰지 않으려 애쓰며 절약하는 녀석에게 늘 부끄러운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녀석이 혼자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한 두 군데 인터뷰를 하더니 볼티모어의 John Hopkins University에서 석 달 동안 Summer Job을 잡아 일하게 되었다. 녀석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해주고  마음 속으로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이 녀석과 석 달을 함께 있게된다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걱정이 일었었지 뭔가. 여러 가지 조건이 이 녀석에게도 좋은 편이었다. 녀석이 그 대학에 석 달 동안 머물러 있을 때 엄마가 볼티모어를 들러 와싱턴 DC까지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고 미리 얘기해놓았다. 이렇게 아이들이 크면 부모 곁에 머물기보다는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모양이다. 

막내 녀석은 여름방학 3년째 내리 뉴햄프셔에 있는 Summer Camp Counselor로 Summer Job을 잡아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이곳은 미국의 아이들보다 외국(유럽, 캐나다)에서 오는 아이들이 더 많은 곳이며 카운슬러로 일하는 대학생만 1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이 녀석은 어려서부터 운동(Ice hockey, Football, Baseball, Swimming 등)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라 이곳에서의 일이 즐겁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니 이 녀석에게는 제게 딱 어울리는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썸머 캠프에 카운슬러로 온 대학생들이 모두 다른 곳에서 온 친구들이니 서로의 나눔이 새로워 좋다고 한다.

이 녀석은 막내 기질이 있어 그런지 아니면 엄마 성격을 닮아 그런지 돈에 대한 관념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에 형이 타이르듯 몇 번을 돈 씀씀이에 대해 동생과 함께 얘기를 나눈다. 엄마는 모르는 척 집안을 오가며 듣기만 한다. 그래도 이렇게 형이나 누나가 얘기를 하면 막내 녀석이 고집이 센 편이지만 그 말을 새겨듣는다. 어려서 연년생으로 세 아이 키우는 일이 내게 버거웠지만, 이럴 때 형제들이 있어 든든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의 특별함이란 이런 작은 것에서 느끼는 행복일 테지 하며 마음에서 진한 감동의 감사가 차오른다. 

오랜만에 삼 남매가 집에서 함께 모여 잠깐 동안 정신은 없었지만, 엄마 아빠는 많이 행복했다. 이렇듯 부모의 곁을 떠나 살다가 잠시 만나 시끌시끌한 시간 속에 추억을 만들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삶의 작은 행복인가 싶다. 이제 각자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아 떠나고 그렇게 지내다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부모가 걸어왔던 그 길을 또 걸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우리 부부는 또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 삶의 작은 모자이크를 채워넣으며 인생의 그림을 마무리할 것이다. 시끌시끌 거리던 집 안에서 세 아이가 모두 Summer Job을 잡아 집을 떠나고.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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