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91회
보스톤코리아  2013-04-03, 12:14:49 
마음이 무거워지는 하루다. 어제는 오랜 친구 몇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번 주일은 '부활주일'이니 교회에서 얼굴 좀 보자?" 하고 한 친구가 인사말을 건네온다.
"그래, 주일날 보자" 이렇게 친구에게 답을 해놓고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신앙생활에 있어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리고 열심이었든 게을렀든 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뭣 모르고 따라다니던 개신교(교회)문 출입을 생각하면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세월 속에 있는 지금 나 자신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던가. 하지만 믿음생활을 하면서 어디엔가 묶인 느낌이 답답해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하지만 가끔 신앙생활에 있어 조율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튜닝'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이랄까. 아니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계획이나 목표라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는 길만 보고 마냥 걷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며 그와 더불어 함께 있는 나 자신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특별히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내 생각 안에서 내 것만 옳다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책이랄까 아니면 회의랄까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날, 이런 날에는 더욱 꿈틀거리며 펄떡거리는 나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를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들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 문정희 시인의 '러브호텔' -

마음이 쓸쓸해지는 하루다. 요즘이야 '여류시인'이라는 표현 자체도 잘 쓰지 않는 21세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오래전 여러 시인들을 이런저런 모양과 색깔과 소리로 표현할 때면 언제나 '여류시인'이라는 수식어 뒤에 문정희 시인의 이름표가 있었다. 시대적인 상황도 그랬거니와 그에 따른 의식도 남달랐을 것이다. 때 이른 시대의 한 여성으로서 홀로서기 연습과 자리매김이랄까. 여류시인이 아닌 한 여자로 봐도 거침이 없다. 하지만 절대 즉흥적이지 않다. 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슬퍼하면서 오랜 시간의 갈등과 고뇌와 고통 끝에 쏟아내고 풀어낸 그녀의 피빛 어린 진실이다.

한국을 방문하면 혼자서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모텔에 숙소를 정할 때가 많다. 처음 숙소를 정할 때의 느낌은 참으로 묘했었다. 죄인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수치감마저 느낄 만큼 말이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에는 '러브호텔'이 많다는 얘기다. 도시의 밤이 깊어가고 네온사인 불빛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할 때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것은 여기저기 수많은 붉은 십자가 네온사인이 가득하다. 글을 쓴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스스로 이류 삼류라고 이름표 내미는 나 같은 시인들이 지천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셋 중 모두가 내 꼬리표에 달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 안에 지었다가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 올리는 '러브호텔'의 방은 점점 커지고 화려해지고 눈이 부시다.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무슨 일인가 잘 풀리지 않으면 남의 탓으로 돌릴 때가 얼마나 많았고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느라 부산스러울 때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남을 의식하고 체면 차리느라 허비한 시간들 속에는 교회 안에서의 껍데기 같은 나의 신앙생활과 예술혼에 빠져 자만심에 있던 나의 시간들이다.

부활주일에 교회는 가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희생할 때만이 남을 살릴 수 있다는 귀한 말씀은 잊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그 어떤 것의 생명일지라도 그 생명을 얻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함을 또 깨닫는 날이다. 혹여, 나도 모르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픔이나 슬픔 그리고 고통에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주변의 가까운 이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슴이길 기도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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