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80회
보스톤코리아  2013-01-14, 12:43:57 
이른 아침 눈이 내리더니 비로 바뀌었다. 결국, 눈이나 비나 그 성질은 똑같은데 느낌은 이처럼 다르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늘 착각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높이 세워둔 기대치를 바라보면서 그에 못 미치면 실망도 하면서 말이다.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부와 명예와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건강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큰 꿈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 보라.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곁에서 보는 가족도 가슴 아픈 일이다. 오늘은 가깝게 지내는 선생님과 몇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돌아왔다. 선생님과 만나 나누는 대화는 폭이 넓어 다채롭고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을 앉았다 왔다.

선생님은 심리학자이시며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시다 몸이 불편해져 은퇴하셨다. 여럿이 커피를 앞에 놓고 둘러앉아 나누는 우리들의 얘기는 끝이 없다. 오랜 세월 마음을 나눴던 친구들이라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내어놓고 선생님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눴다. 삶에서 쉬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하나 둘 내어놓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마음에 남은 아픔과 상처의 치유를 얻는 것이다. 제일 가까운 관계인 부부간의 갈등과 고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가까운 관계들 속에서의 갈등을 하나 둘씩 내어놓고 전문가이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선생님을 몇 년 전부터 뵈면서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어디 하나 흐트러진 모습 없이 단아하신 모습은 젊은 내게도 도전으로 다가왔던 모습이다. 그렇게 가끔 뵈올 일이 있으면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날개를 달아주셨다. 그렇게 인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많이 아프시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다.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멋진 여인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육체의 고통에 시달려 허약해진 한 인간의 모습으로 서 계셨다. 처음 선생님의 쇠약해진 모습을 뵙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순간 선생님께 어떤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심한 당뇨로 눈 수술을 몇 번 받으셨는데 오른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라고 한다. 몸이 불편해지니 정신은 더욱 맑아져 건강했던 육체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마음의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육체의 고통이 꼭 절망이 아니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세상에서 잃어버린 육체의 일부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는 그분의 고백은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였다. 그동안 당신이 가지고 누렸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또박또박 우리들의 이름을 하나 둘 적어 예쁜 카드를 꺼내놓으시는 그분의 그 말간 사랑과 정성에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당신의 몸도 불편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시며 걱정해주시는 그 깊은 사랑에 마음이 뭉클해 온다. 선생님에게서 듣는 얘기는 당신이 몸소 겪었던 인생 경험들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지혜를 일러주신다. 당신이 심리학자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몸소 체험했던 많은 경험을 더 들려주시고 싶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 경험이 지혜가 되어 귀한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삶에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산과 들과 바다를 찾아가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돌아오면 맑은 에너지로 몸과 마음이 확 트인다. 그 느낌의 에너지를 받는 것처럼 삶에 지쳐 깊은숨이 쉬고 싶을 때 가끔 만나 나누는 이 모임은 내게 정신적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이다.

이제는 연세도 있고 몸이 편찮으시기에 거동이 불편하시지만, 모임에 함께 참석하시면 당신도 기운이 솟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게 있는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살아오신 긴 인생 여정의 길 위에서 당신이 겪으셨던 얘기들을 진솔하게 들려주시는 그 사랑이 고맙다. 우리 모임은 연령층이 모두 다르기에 나눔의 폭이 더욱 넓고 깊다. 각자 하는 일이 모두 다르니 나눌 얘기들이 다양해 좋다. 내 얘기를 누군가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누군가가 내게 들려줄 얘기가 있다는 것처럼 고마운 일이 또 있을까. 이렇듯 서로 만나 나누는 일처럼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말이다.

글을 쓰고 Healing Art's를 위해 늦게 시작한 상담심리 공부를 하는 내게 선생님은 멘토와 같은 귀한 분이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당신에게 있는 많은 것을 나눠주시려 애쓰시는 선생님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춤을 추고 글을 쓰는 일이 진정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이렇듯 서로 나눔의 시간 속에서 서로 부족한 곳에 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귀한 시간이 내게 큰 에너지가 되었다. 며칠 몸과 마음이 가라 앉아서 찌뿌드하다 싶었는데, 오늘 나눈 에너지 덕분으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생님의 건강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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