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363회
보스톤코리아  2012-09-10, 15:22:00 
딸아이가 5월에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 준비를 하며 보스턴 시내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가까우니 지금은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4년 동안 떨어져 살다가 한 지붕 아래에서 다시 함께 살려니 엄마나 딸이나 마냥 즐겁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첫째는 엄마의 관심이 딸아이에게는 필요 이상의 간섭이나 참견이라 여길 것이고 성인이 다 되었다는 생각에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쯤으로 들릴 것이다. 그것은 30여 년 전에 경험했던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금 딸아이의 모습이 '내가 내 엄마'에게 했던 그 모습이었을 테니 말이다.

엊그제(Labor Day)는 딸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Outlet Mall에 다녀오게 되었다. 여기저기 매장을 들여다보며 구경을 하다가 우리 둘이는 Shoes Store에 들르게 되었다. 딸아이가 가을 부츠가 필요하다며 하나 사고 싶다기에 이것저것 부츠를 골라 신어보면서 거울을 보고 또 보며 엄마에게 괜찮으냐고 묻고 또 물으면서 한참 신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이것저것을 신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부츠가 하나 있었다. 딸아이의 마음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드는 신발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딸아이가 돈을 벌고 있으니 부츠를 사고 돈을 내는 것은 딸아이의 몫이다.

헌데 딸아이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음에 드는 부츠 가격이 생각보다 비싼 이유이다. 대여섯 번을 신고 벗고 계속 반복하며 거울을 보고 또 보면서 엄마에게도 여러 번 반복해서 물어본다.
"엄마, 이 부츠 정말 괜찮아?" 하고 말이다.
엄마의 생각에 디자인도, 컬러도 아주 마음에 드는걸!
"네게도 잘 어울리는데..."
이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딸아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쉽게 사지 않고 가격때문에 고민하는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내심 고마웠다. 물건을 신중하게 고르는 딸아이의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엄마는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했다.

엄마는 곁에서 딸아이에게 이 부츠는 가을뿐만 아니라 사계절 다 신을 수 있는 신발이니 가격이 조금은 비싼 듯싶으나 아주 실용적이고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여주었다. 이제 아이의 얼굴색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신을 수 있다는 엄마의 후원조의 조언에 마음이 편안했던 모양이다. 아직은 적은 수입을 받는 입장에서 엄마 아빠와 집에서 살고 있지만, 교통비와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용품비 그리고 그 외의 지출이 커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있는가 싶다. 삶에서 돈의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시간 관리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모녀가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며 마음에 드는 부츠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딸아이는 몇 번을 신어보고 거울을 보며 물건을 잘 골랐다는 생각에 흐뭇했던 모양이다. 엄마도 한 번 신어보자는 말에 딸아이가 깜짝 놀라 한다. 엄마의 발이 딸아이 발보다 큰 까닭에 혹여 신발이 늘어날까 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그 엄마에 그 딸 아니랄까 봐. 물건을 살 때는 고민을 하다가도 물건을 사 가지고 집에 오면 거울을 보며 주문을 외우고 최면을 걸듯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나 자신에게 몇 번을 일러주는 버릇이 있다.

딸아이와 함께한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보다가 문득, 딸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하며 땅을 밟고 걸을 때 처음 신었던 신발들(구두, 운동화, 샌들, 부츠 등)을 딸아이 방에 챙겨두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처음 신었던 추억의 신들을 꺼내보고 백일 때 고모가 사주었던 연핑크 '백일 원피스'도 꺼내어 보며 엄마는 오랜 추억에 젖었다. 엄마가 꺼내놓은 작은 신발과 인형 옷 같은 백일 원피스를 보면서 딸아이도 신기하고 새로운지 제 몸에 대어본다. 그 모습이 예뻐 엄마의 마음에도 담고 카메라 렌즈에 살짝 담아본다. 지난 것은 이처럼 모두가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는다.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즐긴 하루의 데이트였는데 그 속에는 딸아이와 엄마의 22년이나 묵은 깊은 인연의 얘기와 추억 그리고 그리움의 보물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딸아이와 마주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스쳐 지나다 말고 오버랩되는 '내 어머니' 모습에 더욱 그리움 짙어온다. 내 어머니 그리운 것을 보니 가을이 오는가 싶다. 내 마음의 그리움이 짙어오는 것이 가을이 오는가 보다. 모든 만물이 익어가고 열매를 맺는 가을, 깊은 생각에 젖을 수 있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여름을 보내며 준비 없이 받은 올 '초가을의 기쁜 선물'은 딸아이와의 오랜 추억을 더듬으며 나눈 고운 시간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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