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57회
보스톤코리아  2012-07-30, 11:37:38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매사추세츠 주의 집에서 출발해 캄캄한 밤 9시가 되어 2시간여 만에 숲이 우거진 뉴-햄셔 주의 '썸머 캠프장'을 만났다. 올 9월이면 대학 3학년이 되는 막내 녀석이 지난해 여름방학 동안 썸머 잡(Job)을 얻어 일했던 곳, 아이들을 좋아하는 녀석이 올여름에도 같은 곳에서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썸머 캠프 카운슬러 일'을 하고 있다. 카운슬러 일을 맡은 대학생들만도 80여 명이 되고 보조 일을 맡은 고등학생 아이들만도 130여 명이 된다니 여간 큰 규모의 '썸머 캠프장'이 아니다. 주로 외국(영국, 프랑스 중국 등)에서 미국의 Summer Camp Program을 찾아오는 외국 어린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07/21/2012)에 있었던 친척의 결혼식에도 이 녀석은 참석을 못했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보러 오신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서 2주 동안 보스턴에 다니러 오셨다. 그런데 막내 손자 녀석이 멀리 있어 보지 못하고 가시려니 여간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 막내 녀석은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휴일이 있는데 자동차가 없으니 집에 오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번에는 가깝게 사는 동네 친구와 함께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녀갔었다. 친정 조카딸 결혼식 참석을 위해 미국에 오신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 전화로 인사를 드렸지만, 그 녀석도 못내 서운한가 싶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서 수요일 이른 아침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데 막내 손자 녀석을 안 보고 가시려니 영 마음에 걸리시는가 보다. 엊그제(월요일)는 시어머님께서 아무래도 녀석을 보고 가셔야겠다신다. 막내 녀석에게 전화를 넣어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서 보고싶으시다며 녀석이 있는 곳을 방문하겠다고 하시니 녀석의 대답이 저녁 늦게 오시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녀석은 썸머캠프장에서 어린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보내고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녀석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밤 9시에서 11시까지라며 9시 정도가 좋겠다고 한다. 손자가 보고 싶은마음과 아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통했다.

우리가 뉴-햄셔 주의 '썸머 캠프장'에 도착할 즈음에는 캄캄한 밤이 되었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이 여름 바람만이 일고 있었다. 도로의 화살 방향표시로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네비게이션(Navigation)의 안내를 따라 하이웨이 길을 나와 좁은 도로를 한참을 가서야 '썸머 캠프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녀석에게 전화를 넣으니 반가운 목소리로 곧바로 나오겠단다. 조금 후 저쪽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엄마의 짐작으로 녀석인 것 같아 이름을 불러보니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해온다. 그리고 손자와 할머니와의 깊은 그리움의 상봉 시간을 맞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만난 시간이 밤 9시였는데 11시까지 캠프장으로 돌아오면 된단다. 녀석이 운전하고 그래도 조금은 번화가인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 나오니 눈에 띄는 곳이 '맥-도널드'였다.
"그래, 그럼 저기로 들어갈까?"
그래서 우리 넷은 맥-도널드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음식을 오더하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밤 10시 되니 시골 동네라서 그런지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사람이 의자를 주섬주섬 탁자 위로 올리며 청소를 시작한다. 손자와의 짧은 만남의 시간이 못내 아쉽고 서운하지만, 팔순이 다 되어가시는 할머니와 몸이 약하신 이모할머니를 생각해서 우리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손자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할머니와 엄마와의 만남은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왔다. 맥-도널드에서 나와 우리는 캠프장을 향해 되돌아가며 운전은 녀석이 담당했다. 서툰 한국말이지만 할머니와 이모할머니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녀석의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모른다. 녀석과 돌아가며 진한 포옹을 한 후 우리는 캄캄한 어둠의 숲을 빠져나와 한적한 시골의 하이웨이를 타고 집을 향해 달렸다. 녀석과 헤어져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어머님과 시이모님께서 녀석을 칭찬해주신다. 어찌 저리도 자상하고 따뜻하냐고 하시면서 아들 덕분에 엄마가 칭찬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2시간여 달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두 어른께서는 많이 피곤하신지 고개를 몇 번 떨구시다 말고 깜빡깜빡 오는 졸음을 애써 쫓으신다. 운전하는 며느리를 생각해 애써 쫓으시려는 마음이 못내 송구스럽고 감사했다. 손자를 보고 싶어 그 먼 길을 마다치 않으시고 달려가시던 할머니의 그 따뜻한 사랑에 감사한 것이다. 할머니를 만나며 반가워 달려드는 그 손자의 모습도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이렇게 사는가 싶다. 가족의 푸근한 정과 사랑을 서로 나누며 서로에게서 감사를 배우고 그렇게 베풀며 삶을 엮어가는가 싶다. 이렇게 서로에게 감동의 시간을 마련하고 허락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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