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44회
보스톤코리아  2012-04-16, 13:11:16 
지난해 가을 동네의 가깝게 지내는 아주머니께서 꽃나무를 하나 주셨다. 열매의 씨앗을 받아 봄이 되어 엊그제는 씨앗을 심었는데 파란 새싹이 오른다. 생명의 신비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다. 곰실곰실 오르는 새싹을 만나니 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주신 큰 감사이다. 이 우주 만물들 속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 공생 공존하는 이유를 일깨우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주고받는 에너지의 선물이다. 며칠 신바람이 난 마음으로 이른 아침마다 물도 주고 햇살 따라 몸을 돌려주니 씩씩하게 자라준다. 이렇듯 생명이 있는 곳에는 에너지가 흐른다. 서로에게 전달하며 주고받는 사랑의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가 쉼 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40여 년이 넘는 이민생활을 해오신 아주머니는 꽃밭을 가꾸며 사시는 동안 꽃밭의 주인이 아니라 꽃밭의 꽃들과 함께 꽃이 되신 것이다. 우리 집에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머니댁은 오가는 길목에서 자주 만난다. 봄이면 봄꽃들이 피어 오가는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여름이면 여름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가을이면 집 앞 길가에 늘어선 키가 작은 갖가지 색깔의 코스모스들이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늦가을에는 손수 작은 꽃나무들을 집 앞마당에다 놓아두신다. 꽃을 사랑하는 오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꽃나무가 있으면 값없이 거저 가져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시는 아주머니는 언제 뵈어도 꽃처럼 곱다.

아주머니께서 들려주시는 꽃 얘기들은 밤새 들어도 끝나지 않을 긴 얘기들이다. 꽃밭을 둘러보다 보면 절로 행복해지는 마음은 세상의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기쁨이다. 꽃나무들의 얘기를 들려주시면 귀를 쫑끗세우고 듣는다. 이 꽃밭의 꽃나무들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돈을 주고 사신 것이 별로 없으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운동 삼아 동네를 걷는데 어느 집 밖에 버려져 시들해진 꽃을 만나게 되셨단다. 버려진 꽃이 안쓰러워 하나 둘 가져와 꽃밭에 심어 물을 주고 부러진 가지를 보듬어 주고 사랑을 주니 저절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더란다. 이렇게 시작한 꽃나무들이 모여 꽃밭을 이루고 그 꽃밭에서 함께 있으면 당신도 절로 행복해지신단다.

꽃밭을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고 꽃을 좋아해서 꽃나무를 하나 둘 키우다 보니 꽃밭이 되었고 그 꽃밭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이제는 그 꽃들이 모두 자식과 같다는 말씀이다. 20여 년을 한동네에서 사니 운전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아주머니댁은 세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는 길목이다. 운전하며 오가는 길목에 나도 모르게 고개 돌려 아주머니댁을 흘깃 보게 되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 어느 계절에 상관없이 늘 손에는 장갑을 끼시고 모자를 쓰시고 꽃밭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뵌다. 그 부지런하신 모습에 때로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삶에서 평생을 몸소 실천하며 사시는 아주머니가 참으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세상의 나이 팔십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지만, 지금도 아주머니를 뵈면 당신의 연세보다 십 년은 더 젊어 보일 정도로 정정하시고 밝은 모습이시다. 젊은이들에게 항상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동료 어른들께는 좋은 친구로 계시는 것은 이렇게 꽃들과 항상 함께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며 사시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생명의 에너지가 이분에게서는 저절로 느껴지는 것이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즐기시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그래서 언제 뵈어도 꽃처럼 곱고 예쁘다. 하루 동안도 꽃밭에서 많은 시간을 자식을 키우듯 흙을 만지고 꽃을 가꾸며 함께 호흡하며 사시는데 어찌 젊은 영혼이지 않을까 말이다.

이 동네에 사는 미국인들도 아주머니가 사시는 그 길목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꽃을 키우는 어머니가 되신 것이다. 40여 년 전 초창기 이민자가 되어 이민 길에 올라 세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사셨다는 말씀을 시부모님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교직에 계시며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셨단다. 그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꽃나무를 심고 꽃밭을 가꾸며 꽃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하시는가 싶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에 있는 여러 제자들이 미국에서 사시는 은사님을 그리워하신단다. 때로는 한국의 제자들이 비행기 표를 보내어 한국을 다녀오시기도 하신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 무엇이든지 수고 없이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동네를 지나며 활짝 핀 꽃들과 꽃나무들을 만나며 거저 누리는 이 기쁨과 행복이 어찌 저절로 만들어졌을까 말이다. 꽃나무를 키우고 꽃밭을 가꾸는 정성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 기쁨을 그 행복을 어찌 내가 그리고 우리가 누릴 수 있었겠는가. 4월의 하루 이른 아침에도 아주머니의 손길은 꽃밭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아픈 곳은 보듬어주고 상처는 감싸주면서 그렇게 꽃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나누고 계실 것이다. 아주머니를 뵐 때마다 기쁨의 감사가 절로 차오른다. 꽃들의 어머니가 되어 꽃밭을 가꾸며 사시는 그 모습에.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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