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43회
보스톤코리아  2012-04-09, 15:02:42 
엊그제는 보스턴 시내의 볼일이 있어 찰스 강 언저리를 지나다 강변로에 활짝 핀 벚꽃에 반해 그만 그 생각을 놓칠세라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찾아가 카메라 렌즈에 몇 컷을 담아왔다. 겨우내 혹독한 한파를 견디며 오랜 기다림으로 봄을 기다렸을 그 기다림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오랜 고목 곁에 하얗게 핀 벚꽃을 만나며 자연의 신비가 생명에 대한 감사가 절로 느껴졌다. 자신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꽃나무에게서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할 줄 알고 이미 그 이치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때를 알아차리는 저 나무들에게서 또 배우는 것이다. 기다림이 없었다면 꽃피우지 못했을 저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저마다 피워올린 꽃들을 보면서 제 모습으로 만족할 줄 아는 자연이 부럽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 누구를 시샘하거나 앞다투어 피려 애쓰지 않고 제 모습만큼 제 빛깔만큼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말이다. 세상의 나이 지천명(知天命)쯤에는 하늘의 뜻을 알아 사는 삶이길 소망하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는 저 꽃들의 모습처럼 그렇게 살아가길 마음으로 기도해본다. 자연은 언제나 내게 스승으로 있어 가르침으로 일러준다. 하루의 삶 속에서 작은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또 타일러 준다. 하루의 삶 속에서 천천히 걸으라고 여유를 가르쳐 준다. 그렇게 일러주어도 또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은 뽑히지 않아 남은 욕심일 게다.

오늘 아침에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읽으며 깊은 생각에 머물렀다. 오늘의 제목은 '마흔의 과제'라고. "나이 마흔. 인생의 절반쯤에 와 있는 시기이다. 이때는 '내 잔디밭'에 대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까지 잘 가꾸어왔어.' '고통도 많았지만 모두 뜻이 있었던 거야.' 남의 잔디밭과 비교할 필요 없다. 내가 만들어 가꾸어온 잔디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 편지를 읽으며 그래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인생에서 남의 잔디밭과 비교하다가 시간 낭비하고 세월 허비하는 인생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마흔의 과제'가 저렇거늘 세상의 나이 오십 줄에 올라 지천명(知天命)에 있는 '오십의 과제'는 어찌해야 할까.

인생 여정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삶을 제대로 챙겨 살기도 참으로 버겁지 않던가. 하루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는 소낙비를 만나듯 우리네 삶 속에서도 생각지도 않은 일을 만나기도 한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건강에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직장이나 사업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게 되는 일이다. 그것은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서로 몸소 느끼고 경험하고 견뎌야하는 부분이기에 더욱 절박하고 절실한 것이다. 그것이 건강의 문제가 되었든 경제적인 문제가 되었든 간에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 이유인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자연을 보면서 배우는 것은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피하려만 하지 말고 그 바람을 맞을 줄도 아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다.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일들을 통해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그 경험과 이해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삶에서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잃은 것 같아 섭섭하고 안타까울 때가 있지만, 그 잃은 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때가 있다. 삶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떠지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그 어떤 일에서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삶에서 그 기다림의 시간은 다른 사람을 위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인 까닭이다.

꽃나무마다 꽃잎의 모양이 각각 다르고 꽃 색깔이 다른 것처럼 꽃이 피는 시기와 꽃이 떨어지는 시기가 각각 다르며 열매 맺는 시기도 모두 다르지 않던가. 이렇듯 우리네 인생도 각자의 삶이라는 나무에서 자신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제대로된 삶이지 않을까 싶다. '마흔의 과제'의 편지처럼 내 잔디밭에 대한 자기 확신과 남의 잔디밭과 비교하지 않는 당당한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사십의 과제'를 훌쩍 넘어 '오십의 과제'를 생각해야 할 내게는 어떤 과제가 있을까 잠시 생각에 머문다. 내 '오십의 과제'는 담담한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어떤 일에 대한 선택의 결정과 그 후에 따른 결과의 책임에 대한 담담함이면.

자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삶에서 그리 조급해 안달할 일도 이유도 없을 게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를 몰라 삶에서 안달하고 볶달하며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상의 나이 지천명인 '오십의 과제'가 맡겨진 이쯤에서는 이제 기다림과 함께 친해지면 좋겠다. 기다림에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낯설어하지 않고 가끔은 그 기다림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배우며 살고 싶다. 지금보다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더욱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것들을 관조하며 걸어가길 소망해본다. 열린 마음의 눈으로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이길 기도해본다. 이제는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기다림을 즐기면서 그렇게 걷고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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