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33회
보스톤코리아  2012-01-30, 12:45:06 
20여 년을 똑같은 머리로 지내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난리다.
"언니, 긴 단발머리에 파마를 살짝 해보면 어때요?"
"얘, 숏커트를 해보면 어떻겠니?" 이제는 지겨울 때가 되긴 된 모양이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로 매일 만나는 가까운 친구나 동생이나 언니들은 지루하기도 하겠다 싶다. 정작 옆에 있는 남편은 아내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20여 년을 넘게 살아도 머리에 대한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어떤 관계나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는데 부부 사이의 무관심이라면 이를 어쩌나. 그렇다고 내일 머리를 쇼커트를 해버릴 수도 없고 고민이다. 머리를 짧게 잘라도 무관심이면 시간과 돈과 정성의 그 아까운 에너지의 소모를.

단발머리 얘기를 시작하려니 오래 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떠올랐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엄마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이었나 보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딸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딸아이가 말해온다.
"엄마, 오늘 엄마 얼굴을 그렸어요." 하고 말이다.
"어디 얼마나 예쁘게 그렸는지 그림 좀 볼까?" 하고 딸아이에게 말하니 제 가방에서 그린 그림을 꺼내 보여준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어찌나 우습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가득 고인다. 까만 단발머리에 왼쪽 눈만 하나 그려져 있고 오른쪽 눈은 머리에 가려 아예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고 큰 녀석이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누나하고 연년생인 이 녀석도 엄마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두 아이가 똑같은 모습의 엄마의 얼굴을 그려온 것이다. 매일 눈뜨면 보고 하루 온종일 엄마와 마주하고 있으니 어린아이들의 눈과 마음에는 눈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발머리의 가르마를 왼쪽에다 두었기에 오른쪽 눈이 늘 가려진 것이다. 순간 엄마는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비치는 어른들의 모습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깨닫게 되었다. 막내 녀석이 유치원에 입학할 즈음에는 머리 가르마를 가운데로 옮겼던 모양이다.

세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똑같은 엄마의 단발머리가 이상스러웠던지...
"엄마, 머리는 언제 자를거야?" 하고 세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 것이다.
"음, 엄마 나이 사십이 되면 그때는 짧은 쇼커트를 할거야!" 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때는 어린 세 아이를 보면서 세상 나이 사십이 그렇게 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을 했다는 듯 세 아이가 물어온다.
"엄마, 엄마 나이가 사십이 되었어요." 하며 세 아이가 엄마의 단발머리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마도 아이들이 자라며 늘 똑같은 엄마의 단발머리가 지루했던 모양이다. 특별히 엄마의 옷차림이나 엄마 친구들의 차림새에 관심이 많았던 큰 녀석의 질문이 앞섰다.

세 아이에게 약속했던 엄마의 나이 사십에 머리를 자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어찌 이리도 훌쩍 불혹(不惑)의 사십을 보내고 내년이면 지천명(知天命)의 오십을 맞는다. 엄마 나이 사십에 머리를 자르겠다던 그 약속을 오십으로 미뤘었는데 내년에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세 아이에게 그 약속을 또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래전 파마를 해본 적이 있는데 하루도 못 가서 그 다음 날에 그만 생머리로 다시 풀고 말았다. 세상 나이 오십이 되도록 생 단발머리를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성격에서 오는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트인 듯싶으나 때로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생각보다 떨어질 때가 있기에.

어느 날 하루 남편이 운전하고 옆 좌석에 앉아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차 안에서 눈부시도록 내리쬐는 햇살에 못 이겨 눈을 찡그리다가 머리 위쪽에 있던 가리개를 내리며 부착된 거울을 보게 되었다. 강렬한 햇살에 비춰 유독 반짝이던 흰 머리카락 하나를 발견하며 내 나이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었으니 흰 머리카락의 숫자는 이제 퍽 많이 늘었다. 이제는 아예 족집게를 핸드백에 넣어서 다니니 이렇다저렇다 할 얘기가 없다. 요즘은 하나 둘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으로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쇼트 머리는 염색이라도 하는데 이 단발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쪽 뇌를 많이 쓰는가 봐! 확실히 오른쪽에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은 걸 보면?" 하고 남자(남편)에게 주절주절 털어놓는 속없는 여자(아내)의 말. 그 푼수 같은 여자(아내)는 어쩌면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싶은 마음에 툭 뱉어 놓는 말에 눈치 없는 남자(남편)는 그게 무슨 말인지 별 대답없이 또 하루해는 저문다. 아무리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지만, 50평생을 자기 생각으로 살아온 서로를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는가. 남편의 무뚝뚝함이 변덕스럽지 않아 좋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에게 위로 삼아보는 것이다. 여전히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 나이 오십의 단발머리와 흰 머리카락의 어울림처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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